만추 - 사랑을 반추하다. by Sion

만추
현빈,탕웨이,김준성 / 김태용

- 주말에 CGV용산에서 디지털 상영으로 보고 왔습니다.

- '시크릿 가든'이고 주원앓이 현빈이고 '색.계'의 탕 웨이고 뭐고 제가 작년부터 이 영화를 기대했던 건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의 차기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오랜만이죠;;(그 사이에 '시선1318' 같이 단편은 몇 있었지만)

- 이만희 감독의 1966년작 '만추'를 원작으로 이번이 세번째 리메이크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저는 원작은커녕 리메이크작들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긴 1966년 원작은 필름이 유실되었다니 보고 싶어도 적어도 지금 당장은 볼 수도 없겠군요_no

* 이후로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알아서-_-)/

- 1966년 원작도 좀 불친절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던데 그것까지 따라간 건지 2010년 만추도 개연성 면에서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남녀의 우연이 좀 잦고, 훈(현빈)이 어떻게 애나(탕 웨이)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알고 찾아왔는지, 훈의 고객이었던 옥자의 죽음과 그 남편의 행동들도 관객을 납득하게 만들기 위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더해서 영화는 내내 좋게 말해 잔잔하고 나쁘게 말해 지루합니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에 봐서 그런가;;

- 김태용 감독 사인(티켓은 '가족의 탄생', 모자이크는 제 이름;;) -


- 우선 무엇보다 공간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안개와 시애틀이란 그림이 되는 장소 자체의 힘도 없진 않겠지만 - 그래서 한두 장면은 시애틀 관광홍보 같기도 하지만_no - 애나(탕 웨이)가 남편을 죽이고 거리로 뛰쳐나와 정신나간듯 터덜거리다 다시 돌아가는 오프닝부터 캐릭터를 중심으로 흐르는 공간감이 참 좋았어요. 이건 보는 내내 유지되었던 것 같습니다.

- 훈과 애나 사이에서는 중간에 폐점한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타다 다른 커플을 바라보며 성우놀이를 하는 장면이 상당히 애틋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성우놀이가 끝나며 춤을 추는 환상장면이 이어지는데 그게 상당히 깼다는 거_no

- 애나 어머니의 장례식 후 식당에서 남자 둘이 주먹다짐을 하게 되는 장면에서 탕 웨이의 복잡미묘한 심경도 참 좋았습니다. 본의 아니게(?) 영화 중 가장 큰 웃음을 선사해 버렸지만, 특히 포크를 핑계로 댄 훈과 사랑했던(혹은 아직도 미련이 남은) 옛 남자 왕징 사이에서 "왜 저 사람 포크를 썼나요?"라며 화내고 오열하는 탕 웨이가요.

- "왜 저 사람 포크를 썼나요?"와 "저 사람 포크를 썼나요?"는 한 글자 차이지만 뉘앙스는 참 많이 다릅니다. 후자는 왕징의 입장에서 그가 포크를 썼는지 안 썼는지부터 사실관계를 확인해보는 것이지만, 전자는 훈의 입장에 서서 왕징이 훈의 포크를 썼다는 걸 기정사실화한 상태로 이유를 묻는 것이 되지요. 애나는 전자를 택했습니다. 마음속 작지만 큰 차이. 별것 아닌 우습기까지 한 순간이지만 한때 그사람을 위해서는 죽을 수 있겠단 사랑보다 훈을 더 믿게 되어 마음이 기운 순간이 아닌가 합니다. 단박에 기울어 엎어진 저울처럼 애나는 포크를 핑계로 그 이전까지 왕징에게 가졌던 울분을 그 자리에서 쏟아내고, 왕징은 포크를 핑계로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합니다.

- 영화의 종반, 감옥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요.

"Nice to meet you. I'm Hoon."
"Nice to meet you. I'm Anna."

내가 누군지, 당신이 누군지 서로에게 알리고 또 알아가겠다는 의미의 첫인사. 그 울림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ㅁ;)b

- 안개가 자욱이 낀 휴게소에서 훈의 몫까지 커피를 뽑아온 애나. 하지만 훈은 이미 옥자의 남편에 의해 경찰에 잡혀가게 되지요. 이때 훈을 찾을 수 없자 커피가 흘러넘치도록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는데요. 흘러넘치지만 양손 가득히 쥐고 놓지 못하는 그 마음이 애처로워보였습니다.

- 2년후, 애나는 출소하여 그 휴게소에서 훈을 기다리지만 훈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의일지 타의일지는 알 수 없지만요. 애나의 그 깊은 여운을 남겨둔 채 Late Autumn이란 크레딧의 등장과 함께 '만추'는 끝을 맺습니다. 긴 키스 한 번 뿐, 그들은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번 남기지 못한(않은) 채로요.

- 개인적으론 솔직히 긴 키스씬이 잘리더라도, 또 그 깊은 여운의 엔딩은 아쉽지만 위에서처럼 감옥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서로 인사하며 영화를 끝내는 게 이상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실제 저는 그렇게 끝날 줄 알았고요;;

- 여기까지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사실상 이 영화는 탕 웨이의 영화입니다. 극을 이끌어 가는 것도 발군의 연기를 보이는 것도 탕 웨이죠. 극중 허름한듯 수수한 그녀의 아름다움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색.계' 때는 잘 몰랐는데 좋은 배우네요.

- 만추, 늦가을은 더 이상 수확할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계절입니다. 그해에 남은 건 이제 혹독한 겨울뿐이죠. 봄이 돌아온다지만 봄은 그해가 아니라 다음 해입니다. 봄을 맞이하려면 그 겨울에 걸친 새로운 해를 맞이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새싹이 나지요. 하지만 내년에 똑같은 나무에서 똑같이 싹이 나더라도 그것은 새싹이지 작년 가을에 이미 져버린 그 싹은 아닐 것입니다. 애나에게 훈은 그렇게 작년 늦가을 같은 사람이 아닐까요? 만추에서 말하는 사랑은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P.S : 그러고보니 제가 시애틀을 안 가본 촌놈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애틀하면 '시애틀의 잠못이루는 밤' 말고는 현실에서 별다방 스타벅스 본점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이 영화에서는 안보였던듯요? 모르고 지나쳤나_no

- 이화시 사인(받은 곳은 '김기영 10주기 기념 전작전' 프로그램북) -

P.S2 : 그러고보니 '만추'를 첫번째로 리메이크('육체의 약속')했던 김기영 감독의 재조명과 함께 배우 이화시도 활동을 재개해 이번 '만추(2010)'에서 현빈의 어머니역으로 열연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 거 같은데 편집되었거나 갈아엎었나 보죠?;; 현빈 쪽은 아얘 가족 얘기가 안 나와서...;;

P.S3 : 그리스 식당 예약 장면이나 훈이 애나에게 돈빌리는 장면처럼 처음 본 여성의 번호따고 이름을 알아내는 연애 스킬 렙업스러운 장면들이 종종 나옵니다. 참고(?)가 된다 싶어도 현빈이 하면 로맨스지만 내가 하면 스토커잖아? 난 안 될 거야 아마_no ( <- )

바쁜 현대인을 위한 한줄요약 : 연애는 얼굴이 만렙. 게임은 만렙부터 시작 아닌가효?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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