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 : 일본만화의 새로운 표현전 by Sion


12월 4일부터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망가:일본만화의 새로운 표현전'의 블로거데이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2010년 여름 이바라키 현의 미토 예술관(水戸芸術館)에서 '新次元 : マンガ表現の現在(신차원 : 망가 표현의 현재)'란 제목으로 열렸던 전시의 한국판이라고 합니다. 일본, 한국,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미술관들이 협력하여 기획되었으며 참여한 나라에서 순서대로 전시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일본에 이어 이번에는 우리나라 순서인 셈. 참고로 '망가'는 '만화'의 일본어 발음입니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살짝 관람한 총평부터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만화 전시회라고 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원화나 콘티 전시 등도 있지만 그보다는 설치 미술 전시회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또 좀 다른 것이 캐릭터 페어에서 볼 수 있었던 그냥 인기 캐릭터가 프린트된 입체물 하나로 끝나는 흔한 설치 미술이 아니라, 2차원인 각 만화가 보여주는 '표현'이란 점을 3차원으로 입체화했다는 것에 가까운 작품들이더군요.


그렇다고 미술이 만화를 압도하며 잰척하는 어려운 예술전시는 아니었고요. 어디까지나 만화가 중심이 되는, 그중에서도 좀 더 집중선을 치자면 선정된 각 만화들이 보여주는 '표현'에 소실점을 두었습니다. 그 표현은 그림, 스토리, 매체 등 스펙트럼이 다양했고요. '2차원으로 표현되고 읽게되는 만화의 느낌을 3차원에서도 주려면 어떻게 표현해야할까?'라는 고민이 묻어나는 전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감각이 중요하게 되고 같은 작품이지만 미토 예술관과 아트선재센터가 전시실 포맷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 전시실의 형태에 맞게 구성을 새로했다고 합니다.
- 큐레이터 다카하시 미즈키와 전시 디자이너 도요시마 히데키. 도요시마씨는 3초 정도 오만석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쿨럭;;) -

사실 저는 이 블로거데이 이전에 3일에 열렸던 오프닝 토크 행사에도 잠깐 들렀었는데 이때 일본에서 온 큐레이터 분이 일본에서 열렸던 미토 예술관의 영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영상에 의하면 두 미술관의 공간 구성이 달라선지 확실히 미토 예술관 쪽이 각각 작품이라는 나무를 보는 느낌이라면 아트선재센터 쪽은 전시라는 숲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 중 어떤 분인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 전날 일 때문에 밤새고 가서_no - 이 전시를 기획하면서 비로소 만화를 보고 공부하기 시작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선지 만화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숙할 '노다메 칸타빌레', '벡', '소라닌' 등 영화화, 드라마화 된 대중적인 작품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만화를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이해가 갈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마츠모토 타이요를 비롯해 덕후들을 위한 작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알아서 골라보시면 될듯. 메인이 되는 것은 설치 미술 쪽이기 때문에 세세히 읽어내리기 보다는 덩어리가 주는 느낌을 따라 편하게 전시를 관람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블로거데이 행사는 21일 저녁에 있었는데요. 조금 일찌감치 가서 벼르던 천진포자에서 저녁을 먹은 후 시간 맞춰 들어갔습니다. 주로 소규모 독립영화들을 보러 지하에 있는 시네코드 선재에는 여러 번 왔었는데 미술관으로서 온 건 처음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안내 데스크에 걸린 벽걸이 TV에서 '망가 : 일본만화의 새로운 표현전'에 초대된 작품들의 장면들이 나오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은 현실 속의 유료관객뿐이야! 무료관객 같은 건 쓰레기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함락신 케이마가 위와 같이 유명한 짤방 포즈로 저를 반겨주셨습니다ㄱ-)b(어?) 와카키 타미키의 '신만이 아는 세계' 역시 이번 전시작 중 하나이며 참고로 원작은 이렇습니다.
안되겠어_이자식_어떻게든_하지않으면ㄱ-.jpg

안내를 받아 이름을 확인한 후 네임 태그를 받아서 바로 옆에 마련된 장소로 들어갔습니다. 아마 원래 카페 겸 도록 등을 파는 곳인듯 싶었어요.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게 이번 '망가:일본만화의 새로운 표현'의 가이드북과 정식 도록입니다. '만화로 이해하는 망가'란 제목의 가이드북은 전시 주제에 걸맞게 그 자체가 만화책이고, 도록은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국어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아마 가이드북이 3천원에 도록이 1만... 얼마였더라?;; 암튼 1만 원 좀 넘는 가격이었습니다.

마련된 다과를 처묵처묵하며 기다렸더니 전시 관람에 앞서 전시의 취지 및 작품 소개를 위한 PT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헐~ 오프닝 토크 때는 산왕 님과 미르기 님을 뵈었는데 여기서는 EST_ 님을 뵙게 될 줄이야;; 약속한 것도 아닌데 또 뵙게 되어 참 반가웠습니다>_<

솔직히 처음에는 'PT 따위 장식입니다. 높은 분들은 그걸 몰라요'란 기분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니 전시작 중에 제가 작품을 완독한 게 반이 채 안 되더라고요(쿨럭;;) 그래서 사전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었습니다_no 특히 '신만이 아는 세계'의 작가 와카키 타미키가 스스로 밝혔다는 약력이 참 인상 깊더라고요;;(먼 산)

오신 분 중에는 아이까지 데리고 온 어머니도 계셨습니다. 어머니부터 아이까지 세대를 관통하는 도라에몽 가방이 인상적이었네요-_-)b 그러고 보면 참여자 중 여성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는데 덕내 쩔거란 제 예상과는 달리 꽤나 대중적으로 어필할 만한 전시인가 봅니다^^;

어쨌건 백문이 불여일견! 2층에 마련된 첫번째 전시실로 이동하여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뭔가 잔상이 생겨서 '도슨트 와쪄염, 뿌우☆' 같은 느낌으로 찍혔는데ㄱ- 저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도슨트께서 안내와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참고로 화~일요일 2시, 3시, 4시, 5시 이렇게 4회에 걸쳐 도슨트 투어가 있다고 합니다. 만화나 팝 아트적인 전시에 관심은 있는데 지식이 좀 부족하다 싶어서 망설이시는 분들은 이 시간대를 노려서 가보시길.


벨벳 커튼을 거쳐 2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마츠모토 타이요의 '넘버 파이브'가 관객을 맞이합니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영상화된 '핑퐁', '철콘 근크리트'부터 '죽도 사무라이'까지 그의 작품들은 보기만 해도 '아, 이건 마츠모토 타이요 만화다'란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하고 개성 넘치죠.

이번 전시작인 '넘버 파이브'는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사이보그 009'를 모티브로 각각 자신의 정의를 위해 싸우는 히어로들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제가 원작을 아직 못 봐서_no 뭔가 제목도 그렇고 2011년 개봉 예정인 헐리웃 영화 '아이 엠 넘버 포(I Am Number Four)'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각각의 히어로들이 지키는 세계의 표현인지 각각의 풍경들이 큼직하게 원화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그앞 테이블에는 원화가 전시되어 있었고요. 원화 보호를 위해선지 원화 위에 유리가 깔려있고 그 위에 투명 스티커로 한글 대사가 붙여져 있었습니다. 뭔가 자막만 입체로 보이는 3D 영화 보는 느낌이 들어 재밌었네요^^;

두번째로 볼 수 있었던 작품은 교실 컨셉으로 전시된 와카키 타미키의 '신만이 아는 세계'였습니다. PT 때 본 저자 약력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21세 소학관 신인코믹대상입선
22세 좌절
23세 무직
24세 게임
25세 게임
26세 히키코모리(은둔현 폐인)
27세 재기를 위해 도쿄로 상경
28세 좌절
29세 게임으로 스스로를 속이다
30세 속이는 것도 한계
31세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다
32세 세계의 멸망을 바라다
33세 알바트로스 연재 개시
34세 알바트로스 연재 중단
35세 저금 잔액 1만 엔(10만 원)
35세 신만이 아는 세계 연재 개시
37세 소학관 만화상 낙선
37세 애니메이션화 결정

뭐랄까 이 작가는 만화가 아니라 약력으로 꿈과 희망을 주는 군요;; 참 보기만 해도 '그래, 나도 할 수 있어!ㅠ.ㅠ 저런 사람도 해냈는데' 싶은 저자 약력입니다ㄱ-)b(쿨럭;;) 재밌는 건 이른 나이에 입선해 인생이 잘 될까 싶었지만 나락으로 떨어지고 뒤늦은 나이에 만화상에는 낙선했지만 애니메이션화가 되어 잘나가는 걸 보면 역시 사람 사는 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가 없구나 싶습니다_no

그런 게임 폐인 생활이 자양분이 되었을 이 작품 '신만이 아는 세계'는 인터넷에서 함락신이라 불릴 정도로 미소녀 게임(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미연시)이라고도 부르던;;)의 달인인 주인공 케이마가 악마의 실수(?)로 그 실력을 쓰레기처럼 여기는(!) 현실의 여자들을 함락시키는데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위에서 짤방보셨죠?;;). 이른바 요새 만화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모에'라는 개념을 비롯해 현실과 비현실의 관계 등 의외로 생각해볼만한 지점들이 많은 만화였습니다. 뭐 그냥 미소녀 게임 클리어 하는 식으로 즐겨도 재밌는 만화이긴 합니다만;;

그런 작품이기 때문에 전시는 주인공의 교실로 형상화 되어 있고 칠판에는 만화책의 주요 장면과 '모에란 무엇인가'를 비롯해 '츤데레' 등 일본 만화의 각종 개념이 적혀있습니다.

칠판 옆쪽 벽에는 그가 함락시켜야할 만화 속 현실의 여자들의 특징이 일종의 미소녀 게임 스테이터스 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쪽에 놓인 TV에서는 일본 미소녀 게임의 성전(!)이라고 할 수 있는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PSP용 4탄인 거 같더군요.
개인적으로 이 전시 중 가장 인상깊었던 전시 중 하나였는데요. 교탁 위에 놓인 돌멩이였습니다. 정확히 어느 캐릭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미소녀의 얼굴이 그려진 게 아닌가 싶은데요. 일단 도키메키 메모리얼 식으로 '시오리'라고 합시다(쿨럭;;). 그럼 '시오리'라는 캐릭터에 모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시오리 얼굴이 그려진 돌멩이를 시오리로 인정하고 이 돌멩이에도 모에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캐릭터는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기 보다는 순전히 보는 사람이 갖게된 상상의 산물입니다. 스마일 마크는 해체해보면 원 하나, 점 두 개, 선 하나 그리고 노란색일 뿐이지만 이 요소가 일정 모양을 이룰 때 우리는 그것이 점+선+원+색이 아니라 '웃는 얼굴'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시오리의 얼굴이 그려진 돌멩이는? 그려진 곳이 모니터가 아니라 시오리가 아닌 걸까요? 아니면 바로 옆에 놓인 골판지 로봇에 시오리란 이름이 붙었다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꽃', 김춘수'

덕후의 웃기는 헛소리로 들리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것이 초현실주의자 르네 마그리트의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야기한 철학적 사고들과 맥이 닿아있지 않나 싶었어요. '이미지의 배반'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담배 피우는 파이프가 그려져 있고 밑에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니? 여기서 우리가 어떤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가 가진 성질과 사물의 성질이 일치하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죠. 그럼 캐릭터와 모에 코드 사이는?

게다가 뒤샹의 '샘'에 이르게 되면 작품의 유일성마저 사라지고 대량 복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는 상황이 오게 되죠. 저는 이 모든 생각들이 캐릭터나 모에라는 코드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멩이가 너무 파격적이면 흔한 예로 시오리가 오뎅 캔에 프린트 되어 있으면? 가방에, 연필에, 노트북에 기타 등등 각종 굿즈들에 프린트 되어 있으면 이건 시오리라는 캐릭터와 동일성 혹은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물건들의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을 터인데 그 캐릭터에 진심으로 모에하는 사람들은 그걸 그 캐릭터의 유일물인 양 구매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오리에 모에하는 사람은 저 돌멩이를 시오리로서 모에할 수 있을까요?

옙, 헛소리는 여기까지_no 솔직히 재밌게 보기만 하면 됐지 이런 생각까지 할 필요 있겠습니까?
- 시바... 모에하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빠는 거지!!ㄱ- -



세번째 작품은 안노 모요코의 '슈가슈가 룬'입니다. 요즘 순정만화는 대중성을 위해서인지 일정 이상 소년만화적인 느낌이 나는 부분이 많은데 이 작품은 그에 반기를 든 것인지 굉장히 장식적인 마법소녀물이라 복고적인 느낌까지 나네요. 그 순정만화의 장식성에 포인트를 둔 것인지 전시는 각 캐릭터들의 장식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더라고요. 이런 장식의 입체 표현은 자칫 잘못하면 유치원 학예회 삘로 전락하기 십상인데 다행히 화려하고 예쁘게 만들어졌습니다^^; 마지막 컷은 안노 모요코 사인이 있길래^^; 사인 덕후로서 여기 전시된 모든 작가 분들의 사인을 받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대리 만족으로 사진만 찍어 왔습니다ㅠ.ㅠ

다음 작품은 헤롤드 사쿠이시의 '벡(Beck)'입니다. 얼마전에 우리나라에서 영화판이 개봉하기도 했지요. 이 작품은 설치물이 어떤 느낌인지 전해드리기 위해 짧게 동영상으로 찍어봤습니다. 영화를 본 후 원작을 보면서도 느낀 건데 가장 소리가 중요한 순간에 귀로 들리는 소리를 배제하고 있다는 게 독특했습니다. 만화는 그 콘서트 현장의 소리와 필링을 어떻게 만화라는 2차원으로 시각화할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군요. 저는 원작을 보면서도 그걸 아발론 페스티발, 돌아온 후의 그레이트풀 사운드 등 중반이 넘어가서야 깨달았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그 표현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 입체물 옆에는 만화의 표지로 쓰였던 앨범 자켓 패러디가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AC/DC의 'Back in Black'을 패러디한 BE/CK 'Beck in Black'을 비롯해 너바나, 롤링스톤즈 등등의 패러디 자켓이 재밌네요^^

또한 극중 코유키가 쓰는 기타인 펜더 텔레캐스터가 실제로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슨트의 말씀을 들으면서 재밌었던 건 원래는 이렇게 생긴 모델이 없었다더군요. 만화에만 등장했던 모델인데 작품이 인기를 얻으며 영상화 되자 실제 이 모델이 출시 되었다고 합니다. 뭐랄까 앞서 했던 생각의 연장선상이지만 이렇게 허구가 현실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걸 생각하면 여러 모로 재밌습니다^^;

* 정정 : 도슨트의 말씀만 듣고 그런가보다 했는데 찾아보니 펜더 텔레캐스터 자체는 원래 있던 기타입니다. Beck의 주인공인 다나카 유키오 시그니처 모델인 TL68-Beck이 새로 만들어져 나왔다는 얘기가 도슨트가 말씀하시는 과정이나 제가 듣는 과정에서 와전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2층에 있는 제1전시실 중앙에 설치된 다섯번째 작품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해수의 아이'입니다. 2층의 마지막 작품이네요. 고래가 뿜어올리는 하얀 포말을 형상화한듯한 하얀 휘장막 속에 원화가 원형으로 놓여있습니다. 그 원 가운데 들어서서 귀를 기울이면 끊임없이 고래 울음 소리가 들려와서 관람객이 마치 해수의 아이가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채색된 원화도 있었는데 종이에 번진 물감을 보니 수채화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바다를 무대로 한 만화답네요^^

다만 이쪽 그림들은 제가 가진 심해 공포를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도 공룡 도감을 보다가 브라키오 사우르스가 물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페이지를 보면 브라키오 사우르스보다 그 큰 몸이 다 잠겨 있는 물이 더 무서웠다능;;;; 하물며 어룡이 헤엄치는 바다 페이지는 엄두도 못 낼 정도였죠_no 지금은 수영을 할 줄 아니 좀 덜해졌지만 초딩 때는 수영장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어 물을 엄청 무서워했었습니다;; 이 전시를 보니 수영의 재미를 아는 지금과 물을 무서워했던 옛날이 함께 떠올라 싱숭생숭했네요.
근데 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저는 이 장면에서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가 강하게 떠오르더라고요;;(쿨럭;;)
2층을 관람을 마치고 3층 제2전시실로 올라갔습니다. 가다보니 이런 마크가 보이네요. 혹시 싶어 말씀드리지만 저를 포함해 이날 간 분들은 블로거데이 행사로 사진 촬영을 허락 받고 한 것일 뿐 기본적으로 전시는 촬영 금지입니다;; 그냥 가셔서 눈으로만 고이 담아오시길-_-)b

마크 밑에 놓인 프린트는 전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여주는 프린트이니 한눈에 봐두시려면 가져가시고요^^
3층으로 올라가면 가장 처음 보이는 여섯번째 작품은 쿄 마치코의 '센넨화보'입니다. 이 만화는 다른 전시 만화들과는 다르게 애초부터 인터넷 연재 만화입니다. 그래서 맥이 설치물로 놓여 있었고요.

작가가 자기 블로그에 처음에는 1000회를 목표로 그리기 시작한 만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목이 센넨(千年)화보라는 뜻이 있다고도;; 지금은 인기가 붙다보니 이미 1600회를 넘어서서 1000년 동안 기억될 수 있는 만화를 목표로 업데이트 중이라고 합니다. 작가의 블로그는 이쪽으로 -> 今日マチ子のセンネン画報( http://juicyfruit.exblog.jp/ )

컴퓨터로 그려서 내놓는 만화 원고는 이론적으로는 종이 원고처럼 공간의 제약이 없죠. 특히 세로로는 무한한 스크롤링을 통해 끊임없는 자기 표현도 가능합니다. 그런 하얀 스크린에 제약 없는 작품 활동이라는 의미를 담은 건지 연재작 액자 이외에도 캐릭터들이 스크린에 해당하는 하얀 벽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자기들끼리 놀기도 하고 관람을 도와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네요.

- 엄마 나 이 카메라 사줘_no ( 작품 제목은 '줌' ) -


오프닝 토크 때 내한했던 '센넨화보'의 작가 쿄 마치코씨. 크흑, 아직 작품을 못 본 상태였던데다 바쁘기도 해서 얼른 갔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사진 말고 사인도 받아놓을 걸 후회막급_no

연재 뒤로 갈수록 대사가 적고 느낌으로 말하는 만화이니 일본어를 모르셔도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일곱번째 작품은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의 영화로도 우리나라에서 개봉했던 아사노 이니오의 '소라닌'입니다. '소라닌(솔라닌)'은 감자에서 나는 새순이 머금은 독을 말한다죠. 이 작품은 만화임에도 그림은 배제하고 작품 속에 많이 쓰였던 표현인 검은 바탕에 흰 글씨 나레이션을 마치 통곡의 벽처럼 설치해 놓았습니다. 만화 자체가 이 시대 젊은이들의 방황과 좌절, 고민이란 현실을 그린 작품이라 그런 것이 아닌가 싶군요.


그 벽 옆에는 두 주인공이 동거하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던 방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신발만 벗으면 안에 들어가서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여덟번째는 2층의 '해수의 아이'처럼 3층의 중앙에 전시된 쿠라모치 후사코의 '역에서 5분'입니다. 유일하게 이번 전시 작품 중 번역본이 정발되지 않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전시 작품은 관람객이 내용을 모두 읽을 수 있게 번역되어 있으니 어찌 보면 첫 번역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소개에 의하면 하나조메역을 중심으로 하나조메쵸라는 도쿄 내 가상의 마을을 무대로 연령도 처한 상황도 각기 다른 인물들이 돌발적인 사건이나 온라인을 통해 만나면서 복잡하게 교차하는 다중 이야기 구조를 가진 작품이라고 합니다. 원래 만화책은 평범한 만화책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컷을 해체해 각 인물별로 라인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각 라인이 평행하게 흘러가다가 중간에 한번씩 만나게 되고. 작가인 쿠라모치 후사코도 일본에서 이 전시를 보고 나서 큐레이터에게 "아, 내 머릿속이 이렇게 되어있었군요."라는 말을 건냈다고 합니다. 그런 만큼 만화라는 이야기의 구조를 머릿속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지요. 바닥에 놓인 컴퓨터는 등장 인물들이 온라인을 통해 서로 만나게 되는 순간들의 표현이라고 하겠죠^^;

또한 만화 속 이야기 컷의 흐름에서 서로가 교차하는 중요한 순간들은 아얘 이렇게 실제로 재현해 놓았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꽤나 임팩트있네요-_-)b

그 다층적인 이야기 구조는 이야기의 무대인 하나조메쵸 마을 건물들이 그리는 스카이라인을 형상화한 하얀 벽을 타고 꼬여들어갑니다. 이 일목요연하게 놓인 다층적인 이야기들의 싱크로를 보고 있자니 예전에 포스팅했던 '인셉션' 영상이 생각나기도 하더라고요^^; 다음 기회에 가서 다시 한 번 더 찬찬히 뜯어 봐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시된 아홉번째 작품은 아마 이번 전시작 중 가장 유명할 니노미야 토모코의 '노다메 칸타빌레'입니다. 드라마, 영화로 공전의 히트를 치고 그 여파로 대중을 위해 쉽게 해설해 주는 클래식 콘서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으며 영화판 최종악장 역시 우리나라에서 이제 개봉을 앞두고 있지요.

벽에는 엘레강트한 인테리어라 더 웃긴 노다메 칸타빌레의 원화들이 액자로 걸려있으며 한쪽에는 콘티들이 들어있습니다.

하면 저 뜬금없는 피아노는 장식이냐? 아닙니다. 알고보니 자동 피아노더라고요-_-)b 관람객이 가까이 오면 자동으로 연주를 시작합니다. 연주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 노다메가 치아키와 처음 만났을 때 연주된 곡이라고 하더군요>_<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면 1층 입구 바로 옆에 있는 카페 겸 서점 한쪽으로 만화방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작품들은 물론 작가의 다른 작품 나아가 다른 작가들의 작품까지 여러 종류가 꽂혀있었어요. 정식 번역본뿐 아니라 원서도 간간히 있으니 보고 올라가셔도 좋고 관람하신 후 와서 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나중에 죽치면서 못 봤던 작품들 싹쓸이 하고 와야겠...ㄱ-(...)

2000년 대 작품들 중 표현에 주안점을 두고, 그것도 미술관에서 예술적인 관점이 아니라 만화적 표현과 재미를 추구한 전시라는 것이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캐릭터 페어적인 상업성과 미술 안에 편입시키려는 예술성은 몇 번 본 거 같지만 이렇게 중간에서 줄을 타는 듯한 전시라니 꽤나 독특하군요>_< 작품 선정이나 전시 형태도 대중성을 잃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고요. 생각보다 볼 거리 생각할 거리가 더 많은 전시였어서 추천해 주신 분께 더더욱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_-_)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는 성인 단돈 3000 원입니다. 눈물 나는 가격이죠?!;ㅁ;)b 더더욱 놀라운 건 학생은 1500원ㄱ- 아트선재센터는 땅파먹고 사나_no 싶은 생각까지 들었습니다(쿨럭;;) 아마도 일본국제교류기금의 문화사업의 일환이라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아무튼 관람객으로선 호재죠+_+

전시기간은 2010년 12월 4일부터 2011년 2월 13일까지이며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합니다. 휴관은 월요일과 설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매일 2~5시까지 정각에 가시면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실 수 있으니 관심 깊으신 분들은 그쪽을 이용하시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또한 1월 20일에는 '일본만화의 새로운 표현을 통한 문화사회학적으로 만화 읽기'라는 심포지움도 열릴 예정이라니 깊게 알아보고 싶으신 분들은 그날 관람하러 가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즐거웠던 전시였습니다>_<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 -> http://www.artsonje.org/asc/


P.S : 이번 '망가 : 일본만화의 새로운 표현'전의 가이드북은 그 자체로 만화책이라는 말씀은 위에서 드렸죠? 제목은 '만화로 이해하는 망가'. 이 책도 생각보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군요^^ 각 전시작들의 내용과 화풍을 패러디하며 그 작품을 설명하는데 재밌고 만화다워서 어울려요-_-)b 가이드북의 주인공들이 스스로 만화의 세계로 뛰어든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도 형식적으로 전시랑 어울리고요. 각 챕터가 끝날 때는 해당 전시작의 간단한 해설도 되어 있어서 가이드북으로서의 기능도 확실히 하고 있었습니다. 3천 원인가 정도였으니 관심있으시면 사서 보시더라도 돈아깝지 않을 겁니다^^


덧글

  • 알트아이젠 2011/01/02 08:07 # 답글

    2월 13일까지니까 한 번 가봐야겠군요.
  • Sion 2011/01/16 18:36 #

    만화를 싫어하는 게 아닌 이상은 봐둘만한 전시회였습니다-_-)b
  • 세츠 2011/01/02 10:22 # 답글

    멋지군요! 이건가야햇ヽ(;▽;)ノ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Sion 2011/01/16 18:36 #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모로 재밌는 전시회니 꼭 가보세요-_-)/
  • 오스테 2011/01/02 10:35 # 답글

    좌절, 게임, 히키코모리까지는 잘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은 약력이군요 후후후후후후
  • Sion 2011/01/16 18:37 #

    아, 아니 일부러 따라갈 거까지는...ㄱ-( <- ) 방문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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