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론트 미션 : 도그 라이프&도그 스타일(Front Mission : Dog Life&Dog Style) - 전쟁에 대한 관조적 시선 by Sion


블로그 이웃인 렉스 님의 말씀을 잠시 빌리자면, 20세기 말엽 저를 위시한 꼬꼬마들에겐 게임을 뇌내망상으로 클리어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게임 월드'를 비롯한 각종 게임잡지에 특별 별책 부록으로 딸려 오던 완전공략본을 라이트 노벨처럼 꼼꼼히 읽으며 머릿속의 상상력으로 플레이해서 깨는 거였죠. 패미콤 이후로 제 콘솔 게임기를 가져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콘솔 게임에 대한 추억과 지식이 대부분 그 완전공략본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완전공략본은 당연하게도 당대에 가장 인기있을 만한 게임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실제로 플레이해본 적도 없으면서 '드래곤 퀘스트 V - 천공의 신부'라든가 '파이널 판타지 VI' 중 세리스의 아리아라든가 등등을 알 수 있었던 건 다 그 덕분이죠_no

그런 게임 중에 하나가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로 유명한 스퀘어(지금은 스퀘어에닉스지만)의 로봇 시뮬레이션 '프론트 미션'이었습니다. 로봇 시뮬레이션이라지만 직접 조종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인 '멕 워리어' 쪽이라기 보단 '슈퍼로봇대전' 비슷한 턴제 SRPG 느낌에 가까웠다고 생각됩니다(물론 이것도 책으로만 봤으니 정확하게는..._no). PC쪽의 '파워돌스' 시리즈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때 저는 '삼국지 시리즈'와 '은하영웅전설 시리즈'를 열심히 하느라 그쪽도 기억이 잘 나진 않네요(쿨럭;;)

아무튼 그 유명한 게임 시리즈의 세계관을 가져온 만화책이 나왔더군요. 안 그래도 예전에 한국만화의 위기론 진단 시리즈로 신세를 졌던 블로그 이웃인 warmania 님께서 번역을 하셨다고 하셔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잘 됐다 싶었습니다.

스토리를 담당하는 원작자는 '문 라이트 마일'로 유명한 오타가키 야스오이고, 그림을 담당하는 작화가는 C.H.LINE이란 필명을 쓰시는 한국인 윤찬희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윤찬희씨는 warmania 님의 인터뷰에도 등장하셨더군요.

일본만화의 최전선을 달리는 사람들(8) - 만화가 윤찬희 편 : warmania 님

확실히 이 만화책 '프론트 미션 : 도그 라이프&도그 스타일'을 보면서 캐릭터들의 팔다리가 쭉쭉 뻗어있고 동양인이 그렸지만 SF 배경에 어딘가 모르게 양키 센스(?)가 뭍어나는 그림이라 묘하게 낯익다 싶었는데 윤찬희씨는 '타임 시커즈'로 유명한 이태행씨 문하생 출신이셨군요;; 잘 몰랐는데 이 '프론트 미션 : 도그 라이프&도그 스타일' 전에 '프론트 미션 : 더 드라이브'란 프론트 미션 만화가 하나 더 있었는데 이걸 이태행씨가 그리고 있었다고 하네요. 다른 시리즈가 되었지만 그 일이 윤찬희씨에게로 옮겨져 계속된 듯. 자세한 건 위 인터뷰를 읽어보시면 좋을듯.

프론트 미션 1
오타가키 야스오 지음, C.H.LINE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프론트 미션 : 도그 라이프&도그 스타일'을 다 읽고 난 다음의 감상으로 들어가자면 왼쪽 라이프로그에 선명히 찍혀있는 '19금' 마크에 아쉽지 않은 표현 수위를 보여주는군요. 전쟁의 논리처럼 흑과 백의 문자로 꽉찬 내지를 넘기면 스토리를 관통하는 주인공인듯한 전쟁 카메라맨 이누즈카가 프론트 미션 세계관의 상징이랄 수 있는 군사용 로봇 번처를 전쟁 중 폰카로 촬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다음장에는 마치 그 폰카로 찍은 스냅사진처럼 전쟁의 참상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효수되어 매달린 머리들, 번처에 밟혀 피곤죽이 된 여자의 시체, (아마도) 떨어져나간 주인의 손목을 물고 다니는 개, 군인들에게 윤간당하는 여자, 불타서 미이라처럼 되어버린 적의 시체와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는 군인, 사적인 포로의 처형 등 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단 한마디의 대사나 효과음 없이 묵묵하게 사진처럼 보여줍니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그런 세상과는 전혀 딴판으로 평화에 찌들어 있다는 표현밖에는 쓸수 없는, 2090년의 도쿄를 보여줍니다. 같은 지구라는 세상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지만 마치 다른 행성,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이야기하는 도쿄 시민들. 첫 세 장 안에서 보여주는 이 강렬한 대비는 이 작품이 어떤 만화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에 대한 무관심은 정보의 왜곡을 낳고, 그 왜곡과 무관심을 넘기 위해 언론은 더더욱 선정적인 보도를 일삼으며, 그 선정적인 보도는 결국 스너프 필름과 다를 바 없는 자극을 팔아 돈을 벌 뿐이라는 결과를요. 그런 보도는 전장이 되는 나라를 통해 전쟁이 없는 나라의 이득을 취하는 '전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요즘 한창 한국 박스오피스 상한가를 달리는 '부당거래'처럼 권력의 정점은 언론인가?란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하네요^^;

씁쓸한 점은 별도로 끼워진 원작자 인터뷰에 보면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는 하프만 섬의 분단 상황이 상당 부분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참고하여 만들어 졌다는 점. 보다보면 통일 전 동서 베를린으로 나뉘어 있던 독일의 상황도 조금 떠오르지만(아울러 공대지 미사일이 빌딩에 꽂히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9/11을 떠오르게 했고;;) 보는 저 역시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론 남북한 쪽이 더 진하게 생각났습니다. 군대 시절 줄창 들은 고층 빌딩 위 대공포 얘기까지 포함해서 말이죠_no(그땐 걔네들 땡보직이라 그랬는데;;)

첫번째 에피소드 '전장의 투명인간'은 평화로운 나라 일본에서 기자로 파견나와 전장 속에 점점 미쳐가는 아키라와 레오나를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 매료되어 변모해가는 현지 채용 카메라맨 이누즈카와 대비하며 대체 전쟁이 존재하는 세상의 '정상'은 무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이누즈카가 카메라를 들고 전장을 촬영하는 이 페이지 컷은 의미심장하더군요. 정의로운 언론인이 전쟁을 고발하고 있다기 보단 그 역시 카메라란 이름의 총을 들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 '프론트 미션 : 도그 라이프&도그 스타일'은 보통 전쟁을 소재로 하는 많은 작품들이 보여주는 '전쟁의 참상에 대한 고발'이라기 보단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전쟁의 양상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아키라와 레오나가 종족유지본능에 의해 벌거벗은 채로 지내며 섹스에 탐닉하는 것도 바로 그 안에서 보이는 '생존'이란 고찰의 결과가 아닌가 싶네요.

뒤이어 실린 짤막한 에피소드 '군인의 노래'는 번처를 타는 두 군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방불케 하는 하프만섬 반격작전을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을 취재한 이는 전장의 투명인간 이누즈카. 일상의 소중한 이들을 잊어버린 채 전쟁에서 야망을 펼치리라던 군인들. 하지만 전투에 있어서 능력을 인정받은 그들조차 총탄 한 발이면 팔 다리가 날아가고 죽는다는 게 만화로서는 다소 김이 샐지 몰라도 저는 참 현실감 있어 좋았습니다.

사실 '번처'라는 로봇형 전투 메카가 등장하는만큼 '기동경찰 패트레이버'가 떠오를 만도 한데 등장인물 중에 이누즈카 같은 밀리터리 오타쿠가 나오지만, 패트레이버 식의 로봇물 하악하악(...) 하게 만들만한 메뉴얼 적인 에피소드는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번처라는 로봇이 중심일 것 같으면서도 번처는 적어도 1권에서는 철저히 주변부에 위치하는 소재네요. 그만큼 인간들의 에피소드에 천착한달까?

그런 의미에서 '프론트 미션 : 도그 라이프&도그 스타일(Front Mission : Dog Life&Dog Style)'은 전쟁이란 소재를 전면적으로 다루면서 다소 관조적이랄까 가치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만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 어떤 판단을 내릴지 모든 것은 독자의 선택에 맡겼다고 할 수 있겠죠^^;

P.S : '프론트 미션 : 도그 라이프&도그 스타일(Front Mission : Dog Life&Dog Style)' 1권은 자그니 님을 통해 학산문화사에서 제공 받았습니다.


덧글

  • lchocobo 2010/11/18 10:54 # 답글

    게임은 맥워리어의 기체 개조 및 무기 장착등에 슈로대의 전투 방식?을 합친 느낌이라고나 할까......근데 책 내용은 그런것과는 관계없는 쪽이군요. 일본인들은 뭐랄까 이런 음습한 미래에 일본을 끼워 넣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같고..(응?)
  • Sion 2010/11/20 00:53 #

    오 합쳐진 방식이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책은 게임의 기본적인 세계관만 빌려왔다는 듯하더라고요^^; 뭐 일본인 뿐 아니라 문화 컨텐츠에 자기 나라 껴넣는 건 다 마찬가지인듯하지만요^^;;;;
  • 11 2010/12/22 00:43 # 삭제 답글

    원작자 오타가키 야스오 작가라고 되어 있고 작화는 윤찬이라는분인데
    콘티를 봤는데
    원작 작가께서 스케치 작업까지 다해서 오는거라면 윤찬이란분은 그냥 다듬는 수준이고 배경은 문하생 들만 죽어라 시키는거니
    문하생만 죽어나고 작가는 놀자판이죠.. 에휴
  • Sion 2010/12/22 17:40 #

    음, 콘티를 보셨다는 건 업계인 혹은 관련자라는 말씀 같습니다만 어떤 팩트 제시없이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조금 문제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야 완성된 책만 보았으니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가 없지만요;; 좀 더 자세한 것을 제시해주시지 않으면 E-Mail이나 블로그 링크도 없는 지나가던 분의 말씀은 신뢰성이 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1 2010/12/23 00:46 # 삭제 답글

    윤찬희 라는 사람을 알고 있어서 그사람이 하는행동을 알기에..
    너무 화나가 있던 나머지
    글을 이렇게 쓰고야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 Sion 2010/12/30 22:05 #

    음, 어떤 일인지 몰라도 시시비비가 제대로 가려져 정당한 결과가 있으시길 빕니다. 연말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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