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영화 - 한국 근현대사의 위험한 줄타기 by Sion

계몽영화
정승길,김지인,오우정 / 박동훈

- 며칠 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있었던 시사회에서 ㅇ모 님과 보고 왔습니다.

- 이 영화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뻔뻔하게(?) '계몽'이란 단어를 제목에 갖다 썼다는 것. 계몽이란 단어 자체가 거창한 느낌을 주고 한 때 첨예하게 쓰인 시대의 단어임에 분명하지만, 시대가 바뀐 지금 세상에선 계몽이란 말만 꺼내도 '껒여 병시나' 소릴 듣기 십상인 어떻게 보면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자들만 쓰는 말이란 느낌까지 있으니까요. 지금 와서 '계몽'이란 '훈장질', '오지라퍼' 등과 동의어라고 봐도 딱히 틀린 건 아닐 겁니다.

- 두번째는 사위 역으로 박혁권이 나와서였습니다. 인디시트콤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도 잼나게 봤고요(그러고 보니 여기에는 감독도 출연하지요;;). '하얀 거탑' 때 홍상일 교수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때 보여준 소시민적인 모습이 좋았거든요. 출세는 하고 싶은데 먼저 나서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뻔뻔하지도 못하고, 막상 그럴려고 해도 정말 독하게도 못 구는 뭐 그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중간에 끼인 소시민 캐릭터. 이 '계몽영화'에서도 그런 연장선 상의 캐릭터이지 않았나 싶네요.

- 그 중간에 끼인... 이란 말이 영화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픽션이긴 하지만 한 가족이 살아가는 얘기인데 그 얘기를 하고 싶은 시대가 일제시대-군사정권-현재에 이르는 참 복잡미묘한 한국 근현대사란 점에서 말이죠. 그래선지 저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사라는 말에 염상섭의 '삼대'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의 시선이 '삼대'의 손자 덕기의 시선과 비슷한 면도 없진 않았다고 봅니다.

- 이 '계몽영화'는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있어서 기계적 중립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한 이야기를 마주 하고 있기 때문인지 이야기의 흡입력이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 여기서부턴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 일제시대의 할아버지(1대)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전통적인 독립VS친일 캐릭터들의 경계를 아얘 뭉개버립니다;; 그렇다고 얼마 전에 반짝 유행했던 모던 보이, 신여성처럼 세상을 즐기는 타입도 아닙니다. 말그대로 그 시절을 살아나가는 생활인의 모습이에요. 그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온 회색지대에 발을 디디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동양척식회사에 근무하면서 회사 방침에 따라 결과적으로 조선인의 농지를 빼앗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농민들에게도 큰소리 한 번 제대로 못 치는 샐러리맨 같은 모습입니다. 같은 조선인 직장 동료는 일본인 상사에게 사바사바하고 줄도 잘 서서 출세가도를 달리지만 그는 누구한테 아부하고 줄 서는 것도 마뜩찮아 하고요. 그러면서 그는 한편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친구의 식솔을 돌봅니다. 이쯤 되면 캐릭터가 혼돈의 카오스죠;; 그러나 캐릭터 메이킹이나 이야기의 흐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캐릭터의 어느쪽이 위선인지 혹은 위악인지, 그도 아니면 모순된 그 모든 요소가 그 사람인지 자의적으로 구분을 짓지 않은 채 그냥 생활인으로서의 그들만을 조망하고 있습니다. 그게 참 독특하더군요.

- 영화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되는데 나치 당원이었지만 클래식 음악 대중화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으로 상징되는 캐릭터들과 (영화에는 직접 소개되지 않았습니다만) 마찬가지로 나치 부역자였지만 유대인 음악가 비호에도 힘을 쏟았다던 푸르트뱅글러 같은 캐릭터들이 이 작품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 개인임에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공과가 명확히 분리되지 않습니다. 공과를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없고 보는 관점에 따라 공과 그 자체가 뒤섞여 버리기까지 합니다.

- 영화는 내내 그런 캐릭터들의 어느편도 들지 않습니다. 영리하다고 추켜세우지도 않고 단죄를 부르짖지도 않으며 심지어는 그 뒤틀린 상황을 비웃지도 않은 채 그냥 그 가족이 대를 이어 살아나가는 얘기를 묵묵히 지켜보기만 합니다. 핑계없는 무덤 없다란 말처럼 캐릭터가 그 시대에 그렇게 살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꼼꼼히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그게 잘하는 거다란 얘길 하지도 않아요. 시대속에 캐릭터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의 어쩔 수 없음은 인정하지만 그 결과로 나오는 여러 폭력적 상황들은 분명 그 개개인이 나쁜놈으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가 성립되어 온 과정을 대를 이어 내려 온 가족의 입장에서 풀어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 아무래도 전반적인 영화의 시점이 과정의 어쩔 수 없음은 인정하고 들어가는 듯해 보이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친일파를 위한 변명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거창한 사명감이나 시대 의식을 걷어 내고 생활 속에 어떻게 한국 근현대사가 쌓여왔는지 더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하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문제작으로 불리는 '반딧불의 묘'와 비슷하게 한 영화로 전혀 상반된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 작품 역시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국 대중들에게 제국주의 찬양 VS 제국주의 참상이란 모순된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으니까요.

- 동시에 어떤 자격론적인 면을 자극하기도 합니다. 386세대에 가까운 손녀(3대)는 할아버지(1대)가 친일파였다는 것을 비난합니다. 하지만 엄마(2대)는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게 다 네 할아버지 덕분이라고 하며 친일인명사전 편찬 때마다 가슴이 벌렁벌렁하다는 대답을 하죠. 그러나 술만 먹으면 자신을 패던 아버지(2대)의 장례식장에서 딸(3대)과 그녀의 선배들은 술을 마시며 386 시절 온몸으로 최루탄을 막은 일을 자랑처럼 떠벌이지만 현재는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식을 명문대에 집어 넣고 아메리칸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장례식 때문에 잠시 귀국했지만 아들(4대)의 조기유학 때문에 미국에 갔던 딸(3대)은 심지어 기러기 아빠인 무기력한 남편(박혁권)을 무시하고 미국에 애인까지 두고 있죠. 이 누가 누구를 비난할 자격이 안 되는 주제 파악은 둘째치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순간 그 비난하는 논리의 화살이 정확히 자기자신을 가르키게 되는 상황은 참 웃기면서도 의미심장했습니다. 이렇게 비난의 논리를 서로 주고 받는 한국 근현대사의 세대 간 상호작용(?)이 참 신선했고요^^;

- 그런데 어린 시절 딸(3대)이 자기 애완견의 목을 매달아 처형하는 장면을 보고 문득 복잡한 한국사는 어쩌면 그처럼 단순한 동기에 의해 여기까지 밀려 온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창한 사명감도, 역사 의식도, 한탕 의식도, 무엇도 아닌, 그냥 단순하게 당장 좆같은 자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나보다 약한 것을 괴롭힌 일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 온 것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렇게 약한 자들은 목이 매달리거나 스스로 매달거나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상황을 다 알고 나서 사위가 목을 매다는 길을 선택한 것처럼요.

- 60년대 어머니와의 데이트 중 경보 사이렌에 놀라 마루 밑에 처박혀 덜덜 떠는 아버지(2대)의 젊은 모습을 보여준 것도 그런 맥락의 일부가 아닐까 싶었네요. 아버지가 술에 절어 가정 폭력을 휘두른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전쟁의 트라우마가 깊이 새겨져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에게 힘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그렇게 캐릭터에 하나하나 이유(혹은 핑계)가 있으니 맘 놓고 미워할 악역이 없습니다. 어느쪽으로도 감정을 분출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면에서는 상업영화로서 좀 한계를 갖지 않을까요?;; 하지만 저는 그렇기 때문에 픽션임에도 이야기나 캐릭터가 현실적인 설득력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 방향으로만 성격의 아구가 맞아 떨어지는 건 말 그대로 허구에 등장하는 '캐릭터'겠죠.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종종 뉴스에 나는 남의 아이들을 혹사시켜 자기 자식 호의호식 시키는 아버지가 성격적으론 모순된 캐릭터일지 몰라도 더 현실적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 마지막에 영화는 처음으로 자기 주장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바로 딸(3대)이 자기 가족이 옛날에 살던 서교동 집 현관문을 아얘 바꿔달라고 주문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직전까지 오빠(3대)는 수리하는 아저씨에게 어떻게 안 되겠냐며 여태까지 많이 본 '대충 지금만 때우고 지나가자'는 포스로 문의 고장난 부분만 고칠 수 없겠냐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아저씨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지금 조금 수리해봐야 다시 시간이 좀 지나면 위에서 벽이 주저앉아 현관은 또다시 뒤틀릴 거라고 경고합니다. 현관 전체를 아얘 바꾸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요. 처음에는 오빠말을 듣고 있던 딸은 뭔가 결심을 하고 그 아저씨가 말한대로 현관문 전체를 바꿔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과거의 자신과 마주 하죠. 여태까지 방치해 놓고 쌓여온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모조리 뜯어 고쳐야 한다 란 주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다만 감독이 이런 생각이었다손 치더라도 인권이란 개념이 피해자보다 가해자들에 의해 악용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친일파를 비롯한 각종 기득권층의 변명으로 쓰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입니다. 줄타기와 물타기는 잘 구분이 안간다는 점에서도 말이죠.

- 독립 영화라 예산 때문인지 인물들의 - 특히 아버지(2대, 1980년대 이후의 늙은 모습) - 분장이 좀 많이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시대에 맞는 자잘한 소품들의 디테일은 잘 살린 편입니다. 번들번들한 엽차 잔, 삼양라면, 병우유, 취루탄 냄새에 울면서 돌아오는 심부름길 등등요.

-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 '전쟁영화' 때 감독이 한 연출의 변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거부하고 싶은 것들,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단절시키고 싶은 것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 허탈하다면 허탈하다고 할 수 있는 이 감정, 이 느낌을 비틀어 색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다."가 역시 이 영화에도 딱 들어 맞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P.S : 시작 전에 무대인사가 있었는데 진행자께서 느닷없이 티켓 뒷쪽에 파란 스티커가 붙어있는 관객은 끝나고 나갈 때 소정의 기념품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뭔가 했더니 영화 중간 60년대 다방 데이트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선물한 것처럼 보자기에 싼 원조 삼양라면 세트(+'전쟁영화' DVD 등)ㅠ.ㅠ)b 영화랑 잘 맞는 센스 있는 기념품이었네요. ...근데 이게 무슨 소리요 진행자 양반. 라면 초 좋아하는 내가 탈락이라니! 내가 탈락이라니!ㅠ.ㅠ 으아니! 챠! 표가4장이나이썬는데난왜햄보칼쑤가엄써!!ㅠ.ㅠ


핑백

  • EBC (Egloos Broadcast Center) : 9월 16일 이브닝에 실린 글 2010-09-24 12:18:29 #

    ... 0(티켓 추후공지+책2권)혈소판 부족 사태 by Polycle 버스에서 이어폰 없이 DMB 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by 어흥씨계몽영화 - 한국 근현대사의 위험한 줄타기 by Sion이글루스로 보는 블로그세상 (이브닝 9월 16일자)* 게재된 내용을 보시려면 PDF 파일을 다운로드하세요!* 게재되신 분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