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승자 - 인간 김대중의 포토 에세이 by Sion

저자 인터뷰를 한 친구에게 책을 하나 받았습니다. 생각비행이란 출판사에서 나온 '사랑의 승자'란 제목의 책이네요. 서거 1주기를 맞이 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포토 에세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사진 기자 시절 보도사진으로 찍었지만 대부분 공개되지 못한 사진들로 채워진, 음악으로 치자면 B-Side 모음집 같달까요?
책 표지부터 심상찮네요. 1991년 4월 26일 경찰의 폭력 진압에 의해 사망한 명지대 강경대 군의 장례식이 끝나고 거리시위가 이어졌습니다. 표지 사진에도 쓰인 위 사진은 당시 김대중이 강경대 군에게 조의를 표할 때 벌어진 사건을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그때 한 전경이 분말로 된 최루가스를 당시 야당 대표였던 김대중의 얼굴에 직접 뿌려버렸다는 군요;; 그때 곁에서 사진을 찍던 저자(당시 중앙일보 기자)에게도 튀어 눈을 제대로 뜨기가 힘들 정도였다네요.

80년대 말 '독.재.타.도'를 외치던 대학가 시위가 익숙하신 분이라면, 직접 참여하진 않았더라도 최루탄 냄새에 눈물 콧물 질질 흘려본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저 역시 꼬꼬마 시절 숭실대 근처에 살아서 학교 갔다 집에 올 때 시위라도 할라치면 사거리에 퍼진 가스 때문에 엉엉 울면서 집에 와 물을 한 바가지 받아 거기에 눈물 콧물 째로 얼굴을 처박았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런 걸 가스도 아닌 분말로 얼굴에 직격 당했다면 그 고통이 장난이 아니었을 겁니다. 사진에 보이는 입 근처에 묻은 하얀 가루가 전부 그 분말이라니 말 다했죠;;

당시 중앙일보 사진 기자였던 저자는 물을 얻어 겨우 씻어냈지만 김대중에게 물 한 바가지를 갖다 드리려 하자 모조리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를 도와줬다간 경찰들이 날 가만 두겠냐'란 거죠. 그 동네가 전두환, 노태우가 사는 연희동이었다니 몸사리는 것도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닙니다만;;

아무튼 저자는 특종을 잡았다고 생각하고 얼른 사진부장에게 이 사진을 제출했으나 그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고 합니다. 이부분은 책에서 인용해 봅니다.
사진부장 : DJ 건 안 써!!

결국 특종사진은 사장되고 말았다. 그 사진은 어디로 갔느냐고? 신문사 사장의 뜻을 잘도 헤아린 사진부장에 의해 - 도를 넘은 행동일 수도 있다 - 편집부에는 전달조차 되지 못했다. 만일 사진부장이 "이 사진은 뉴스 중요도에서 떨어져 게재할 수 없겠다"라고 말했다면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DJ 건 안 써!!"라는 말은 전혀 다르다. 이 말에는 사적 감정이 들어 있다. 기자가 쓰는 기사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조사한 일이 있다. 그 1위로 신문사 사주라고 기자들이 답한 통계가 있다.

우선 17일자 PD수첩 불방 명령을 내린 MBC 사장에게 아오 빡쳐! 한 번 하고ㄱ- 이것들은 법으로 안 되니 힘으로 해결하네_no 별 기대도 안 했지만 법치주의 존나 떠든 게 누구더라?ㄱ- 1991년과 같은 일이 다시 한 번 벌어진 걸 보면 이미 가카께서는 잃어버린 10년을 더블 스코어로 초과 달성>_<(...통일세 운운부터 알아 봤다ㄱ-)

개인적으로 김대중이 대통령으로서의 공과 과는 여럿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오는 울트라 명스크 앞의 마린 정도?ㄱ- 그가 살아온 인생 역경과 그 역경을 딛고 끊임없이 일어선 부분 만큼은 인정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김대중이란 이름 석자만 나오면 욕부터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요;;

얼마 전에 개봉했던 '어둠의 아이들'의 감독 사카모토 준지가 2002년에 'KT'란 영화로도 만들었던 '김대중 납치사건'이나 전대갈에 의해 내란 음모죄란 누명을 쓰고 사형 선고까지 받은 것 등 큰 것만 따져도 죽을 고비가 몇 번입니까 대체;; 그때마다 국제적인 도움으로 살아난 건 둘째치고, 자기가 믿던 길을 끝까지 추구해낸 것은 대단하다고 봅니다. 그 길에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요. 저 같으면 미쳐버렸거나 다 때려치고 외국으로 도망가서 살았을 거 같기도 하거든요_no

근데 보통 그런 인물의 사진집이라면 자서전이나 신문에 실리는 사진들처럼 근엄하거나 멋진 사진만 실려있을 거 같았는데, 의외로 이 책은 생활 속의 인간 김대중을 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정치 사진을 다룰 때도 꼭 그 이면을 다루고 있고요.
예를 들어 이런 사진. 김대중, 김영삼, 정주영이 카메라 앞에서 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하는 모습입니다. 뉴스나 신문에서 노상 볼 수 있는 사진이자 정치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이지요. 그러나 이 책에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 군요. 다시 좀 더 인용하자면...
언론 앞에서 정치인들은 악수하고 웃음을 보인다. 그러나 합의하는 건 하나 없다. 그 이유와 원인을 찾아내는 게 언론의 역할이건만, 언론이 한 일이라곤 양쪽 다 싸잡아 비판하는 것뿐이었다. 모두 다 잘못했다고 하면 좀 더 나은 자는 억울하고, 지탄받아야 하는 자에겐 되레 칭찬이 될 수 있는 게 양비론의 허실이다. 양쪽을 모두 탓하는 보도는 객관적이거나 이성적인 보도와는 관계없이 사실을 감추고 가리는 가면이자 편들어 주기의 다른 모습에 불과할 때가 잦다. 이를 우리 언론이 너무나 자주 악용하고 있다. 그 사실을 이제는 국민이 알아야 한다.

그 다음 페이지에 전면으로 찍혀있는 사진. 서로 눈길조차 안 마주치는, 이것이 아마도 그들의 솔직한 심정이겠죠;;

다음 사진은 좀 더 재밌었습니다. 다른 회담 중에 플래시는 펑펑 터지고 카메라는 돌아가는데 할 말도 없고. 날씨 얘기도 한두번이죠;; 그래서 중간에 싸해졌을 때라고 하네요.
김대중은 피로한지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고, 김영삼은 콧구멍을 긁적긁적, 정주영은 그저 고개만 숙이고. 이때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니 나름 승리의 사인?!(...) 신문이 바라는 보도사진은 아닐지 몰라도 이런 뒷모습이 마치 아이돌의 백스테이지를 엿보는 것 같아 재밌는 거 같습니다^^;
또하나 재밌었던 사진은 영부인이었던 이희호 여사의 사진입니다. 당시 중앙일보 기자였던 저자가 사진을 가까이서 연신 찍어대니 조금 경계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선거전에서 상대 후보가 김대중의 건강 상태를 물고 늘어졌기 때문에 그 역시 이희호 여사의 주름을 드러내기 위해 집요하게 사진을 찍고 있다고 오해한 거죠;; 사실 저자는 김대중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름이 되도록 안 잡히게 하기 위해 그런 건데 말입니다.

뭐 겨우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선거전은 정말 한표 한표가 중요하기 때문에 진짜 벼라별 걸 다 신경씁니다. 몇 년 전에 본 소다 카즈히로 감독의 '선거(選挙)'란 다큐 영화를 보고 혀를 내두른 적이 있는데요. 선거 전략 중에 이런 게 있다더군요. 남자 후보자는 사람들에게 자기 부인을 지칭할 때 절대 '妻(처, 아내)'라고 해선 안 되고 무조건 '家内(집사람, 안사람)'라고 해야 한다고요. 안 그러면 부인조차 집에 두고 다스리지 못하는 남자가 밖에서 뭘 할 수 있겠냐고 유권자들에게 얕잡혀 보이기 때문이랍니다;; 일본 선거이긴 했지만 그 영화를 봤을 때 정말 '하아??;;'스러웠는데 우리나라라고 별로 다를 건 없었군요_no
그러다 보면 정치, 연예를 안 가리고 사진 기자가 제일 많이 찍게 되는 사진은 이런 게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추임새가 붙으면 그거시 바로 과일촌이 부릅니다. '찍지마 씨발, 찍지마. 아오 열뻗쳐서 증말.' ( <- )

그밖에 이 '사랑의 승자'의 전체적인 구성은 공전절후의 사골(...) 베스트셀러 파페포포 메모리즈 같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만, 이렇게 쓰다보니 그보단 블로그 포스트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습니다. 짤방과 그 짤방에 얽힌 저자 자신의 경험을 가감없이 짤막하게 이야기하고 있었거든요. 정치인이 주인공인데도 무거운 자서전이나 정치 회비 모금용 책과는 달리 자기 찬양적이지 않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기찬양은 커녕 저자는 김대중이 국립 현충원에 묻힌 것을 맹렬하게 비판하더군요;;

평생 자유와 민주를 위해 싸운 사람이 왜 정작 죽어서는 박정희가 잠든 감옥 같은 곳에 묻혔냐고요. 그러면서 민주화 인사들이 묻힌 망월동이나 노무현과 같이 안장되는 게 어땠을까 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물론 국립 현충원에 묻힐 자격이 충분한 사람임은 인정하면서도 좀 더 국민들이 찾아 가기 쉽고 가까이 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하고 안타까워 하고 있는 거죠. 이 부분은 김대중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거 같습니다;;

이렇게 일견 맹랑할 정도로(?)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저자가 누군가 좀 봤더니 10여년 전 중앙일보에 대자보를 써붙이고 제발로 나온 오동명 기자더군요;; 저는 이름은 기억을 못 했었거든요_no 당시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이 탈세 혐의로 소환 받자 중앙일보 기자들이 문 앞에 도열해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친 사건이 있었는데, 이건 조폭도 아니고 언론이 그러면 되냐 라는 취지의 대자보를 본사에 붙이고 중앙일보를 박차고 나와버린 사람이 오동명이었어요. 그 "사장님 힘내세요!"도 웃겼지만 거기서 박차고 나온 사람이 있다기에 당시에 오~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뭔가 10년이 지나 건희제 = 쁘띠 거니 횽아의 노여움을 산 '삼성을 생각한다'의 김용철 변호사랑 비슷해 보이기도 하네요;; 뭐 중앙일보도 넓게 보면 샘숭 기관지니까ㄱ- ...화내는 거니?(...)

일진도 이진도 아닌 청와대 출입 삼진의 사진 기자가 여당에 밀려 주목 받지 못하던 야당 총재 김대중과 화장실에 나란히 서서 오줌 누게 된, 참으로 별 것 없는 인연으로부터 갖게 된 호감이 책에 잘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사진 기자는 그 이후로 쭉 책을 쓰게 되고, 삼진 기자가 상대하던 야당 총재는 대통령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고. 참 세상은 역시 살아볼 일입니다-_-)b

8월 18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이해 그분의 가장 유명하면서도 좋아하는 말을 인용하면서 훈훈하게 끝을 맺겠습니다. 스크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보아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_no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라며 정치와 관계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은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뺀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는 자들이다.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자들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 저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

P.S :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게시판은 이쪽으로 -> 클릭(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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