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 복수는 나의 것 by Sion

악마를 보았다
이병헌,최민식 / 김지운

- 롯데시네마 신림에서 디지털 상영으로 보고 왔습니다.

- 다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슈밤, 괜히 쫄았네;;'였습니다. 두 번에 걸친 제한상영가로 예정되어 있던 시사회도 모조리 취소된 후 원 개봉일이던 11일에 부랴부랴 치러졌고 졸지에 정식 개봉일도 하루 미뤄지기까지 했죠. 그런데다 기사와 리뷰들도 극도로 잔인하다는 말이 꼭꼭 들어있길래 엄청 쫄았었거든요;;

- 확실히 데이트 무비 혹은 심심풀이 시간때우기로 영화를 1년에 몇 편 안 보시는 분이라면 시각적 충격이 상당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영화를 이것저것 잡식해 오신 분이라면 이걸 봐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할 정도는 아닙니다. 보통 폭력이 들어 있는 상업영화가 그걸 최대한 멋지게 혹은 폭력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에 카메라를 돌려 버리는 방법 - 예를 들어 칼로 베는 장면이라면 보통 칼을 휘두르는 건 보여주지만 베이는 순간은 베이는 사람에게서 칼을 든 사람에게 카메라를 돌려 얼굴에 피가 튀는 걸로 신체 절단을 암시만 한다든가 - 을 취했다면, 이 영화는 돌리지 않고 잘리는 장면을 그대로 응시하는 정도의 차이?

- 봤던 영화를 기준으로 삼자면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나 '킬 빌' 나아가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을 볼 수 있었던 분이라면 큰 부담이 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공포(특히 귀신 나오는 거)스럽거나 밑도 끝도 없이 놀래키기만 하는 건 못 보지만 잔인한 건 크게 상관없는 개인적인 영화 관람 성향 탓도 있으니 고려는 하시고요;;

* 이후로 스포일러 있을지도...

- 더해서 많이 얘기 되는 게 A급 배우에 A급 감독이 대규모 자본을 들여 한국 상업영화계에서 이런 끝까지 밀고 나가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상찬이 있지만 그건 이미 2002년에 '복수는 나의 것'에서 본 것들 아닌가요?(아, 대규모 자본은 다른가;;) 박찬욱 감독이 '공동경비구역JSA'로 대박을 낸 직후 차기작이 '복수는 나의 것'이었고 주인공은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였죠. 엑스트라로는 류승범은 물론 류승완까지 나왔었고요ㅎㅎ 게다가 공업용 커터칼로 할복하는 장면이나 송곳으로 대동맥을 찔러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오는 장면, 전기 고문으로 오줌 지리는 장면, 복수를 한 후 그 년놈들의 신장을 꺼내 꾸역꾸역 씹어 먹는 장면 등... 이렇게 꼽고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어부 밴드의 음악과 신경을 긁는 효과음들까지 합해 굳이 따지자면 '복수는 나의 것'이 더 잔인한 거 같은데...ㄱ- 아, '복수는 나의 것'과 '악마를 보았다'에 공히 등장하는 아킬레스 건을 끊는 장면도 전자가 훨씬 섬뜩해 보였고요;;

- 쯧, 잔인함 같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건 재미없어서 짧게 하고 싶었는데 결국 늘어졌네요;; 나도 말 좀 짧고 간결하게 잘 했으면 좋겠..._no(먼 산)

- '악마를 보았다'의 몇몇 장면은 기시감이 느껴졌습니다;; 최민식이 낫을 들고 이병헌에게 달려드는 씬은 '올드보이'의 장도리 액션씬+유지태의 팬트하우스에서 달려드는 씬을 떠오르게 만들었고, 김옥빈 코스프레한 여자(?!)와 밥상머리에서 붕가붕가 하는 씬은 '친절한 금자씨'. 두번째(세번째였나?) 놓아준 터널 씬은 '살인의 추억'에서 박해일이 터널 속으로 사라지는 씬의 역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선 살인 용의자가 검은 터널 속으로 사라지며 사건이 미궁속에 묻히지만, 여기선 살인마가 검은 터널 속에서 세상으로 다시 나타나며 결판을 지으려 하죠. 되게 비슷해 보여서 장소까지 같나 했는데 그건 아닌 듯. '살인의 추억'은 진주 죽봉 터널이라는데 이 영화에선... 이름이 갑자기 생각 안나지만 아무튼 그 이름의 터널은 아니었음. '감독이 감사하는 분들' 명단에 봉준호와 박찬욱도 있었던 걸 보면 패러디나 오마주 같지만 좀 재미없었네요;; 아, 손수 조커 만들기도 있었죠 참;;

- 전면에 내세운 것이 '복수'란 코드인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통적인 형태의 복수극은 아니란 생각이 드네요. '복수'란 말에 '몽테 크리스토 백작' 같은 로망을 담은 영화겠거니 하신다면 다시 생각해 보시길;; 관객은 보통 복수를 달성해야하는 자(대부분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그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복수를 달성했을 때 어떤 대리만족과 달성감,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낍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묘미(?) 때문에 복수극을 굉장히 좋아하는 데요;; 이 영화는 그런 복수극이 아닌 거 같습니다. 복수자와 복수의 대상이 서로를 닮아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인지 거의 어느 쪽으로도 감정 이입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주인공의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이 어떤 안타까움 같은 것을 주지도 않고요. 그냥 현실에 있을 법한 복수의 모습을 무심할 정도로 관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 어떤 형태로든 복수를 꿈꾸고 있던 관객들에게 그 추잡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서 '아서라!'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공익 캠페인인가 싶은 생각도 언뜻 들었습니다. 일종의 충격요법?!(쿨럭;;)

- 영화 자체에 대한 호오도 그렇지만 감정이입의 문제도 극단적으로 찬반이 갈리는 거 같습니다. 같은 씨네21 안에, 같은 100자평 안에서도 '이병헌과 최민식의 무시무시한 열연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 중 누구에게라도 감정이입하기 쉽지 않을 지경이다. - 김용언 기자'와 '아마 김지운 감독의 영화들 중 감정이입의 강도가 가장 세지 싶다. - 주성철 기자'라는 일견 서로 상반되다 못해 모순되어 보이는 이야기가 나란히 실렸을 정도니까요;;

- 또 하나, 현실적인 복수의 모습이라면 주인공이 국정원 요원인 건 좀 그런 거 같습니다. 캐릭터의 현실성을 보장할 수 있어도 뭐랄까 요즘처럼 연쇄 강간, 살인 사건에 공분한 사람들의 복수를 대신해 주는 대리만족보다, 보통 사람들은 '그래, 그래도 국정원 요원 쯤 되어야 복수할 주제라도 되는 거겠지. 보통 사람들은 신고도 제대로 못하고 밟히는 거 밖에 더 있나'라는 허탈감 내지 무력감에 더 빠질 거 같거든요;; 특히 그 자리에서 죽이는 것도 아니라 계속 남만왕 맹획 기믹(?)을 쓰는 이병헌을 보면서 저는 대리만족보다 그런 허무감을 느꼈습니다. ...이 역시 복수의 허무감으로 '아서라!'란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던 거라면 납득ㄱ-(...) 어떻게 보면 그런 현실 앞의 무력함이 악마가 아닌 인간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조건일지도. 악마도 스펙이 되야 되는 거다(먼 산)

- 맨 마지막에 살인마의 가족을 불러 그들의 손으로 목을 치게 되는 장면은 그냥 이병헌의 이어폰을 통해 써컹! 하고 잘리는 소리만 들리는 게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 어차피 거기까지 밀어붙여 표현한 거, 거기만 그러면 그것도 웃기겠다 싶더군요;; 어떻게 보면 나쁜 놈(?)이 죽는 모습을 똑똑히 보여주는 친절한 영화(어?).

- 두 가지는 좋았습니다. 우선 하나는 복수는 너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라는 것. 복수자는 죽은 누군가 혹은 다른 무언가(가족이나 명예 등등)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복수는 살아있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장인에게 전화를 받은 이후의 이병헌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 또 하나는 역시 사적 구제와 세태에 대한 것. 극중에서도 최민식이 못 본 일 하나만 보고 자수하겠다고 할 정도로 법에 의한 처벌이 우습게 보이는 세태는 울분을 자아냅니다. 예를 들자면 위장전입을 대중 앞에서 인정해 놓고도 고위직 예정자니까 사과만 하고 넘어가면 유야무야 되는 걸 볼 때의 울분이랄까요? 원래 위장전입은 3년 이하 징역 내지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이죠. 그게 만약 일반인이었다면...;; 법에 의한 형벌을 '처벌'이 아닌 '교화'라는 측면에 주목하자고 해도 영화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들의 존재 자체가 그것을 부인하고 있고요. 대중들 사이에 법적 처벌의 수위가 온당한지에 대한 불만이 계속 쌓여왔기에 이런 영화들이 연달아 나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악마를 보았다'도 상당히 긴장감을 유지해 주는 건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 근래에 염통이 쫄깃해질 정도로 완전 쫄게 만들었던 영화는 미하엘 하네케의 '퍼니 게임 US'였습니다. 잔인한 건 아닌데 심리적으로 완전 쫄았었어요_no 게다가 그 영화는 무려 어렸을 때 원작 보고 쫄고 이번 리메이크로 또 본 건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원작이랑 다른 점도 별로 없는 리메이크라던데 뭘~ 하면서 방심하고 있다가 초장부터 팍 쫄아서 끝날 때까지 긴장 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긴장감을 원한다면 이쪽을, 완전한 복수극을 원한다면 '복수는 나의 것' 쪽을, 그래도 '달콤한 인생'의 김지운+이병헌인데 한 번은 봐줘야... 라면 '악마를 보았다'를 택하겠습니다_no(어?)

- 영화가 나쁘다 과했다 이런 건 아니고 이병헌, 최민식이 연기를 못하냐 하면 그것도 아닌데 역시 뭔가 허전해요;; 이게 제한상영가 먹고 급히 재편집 및 삭제가 이루어졌기 때문인가 싶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김옥빈 코스녀(?)가 경철(최민식)에게 강간 당할 때 처음엔 저항하다 나중에는 자기가 더 좋아 달려드는 야동 판타지스런 장면은 여성 관객을 중심으로 원성을 많이 사는 장면이지요. 근데 감독 인터뷰를 보니 잘려나간 장면들 때문에 앞뒤가 안 맞게 되어 그렇지 김옥빈 코스녀는 원래 경철의 애인이었다고 하네요;; 그냥 오랜만에 만난 정신줄 놓은 애인끼리의 섹스인 셈_no 역시 '킹덤 오브 헤븐'처럼 모든 걸 뒤집는 감독판이 나와 줘야...ㄱ- 부디 김지운 감독이 흑형의 트랩카드 센 영화의 함정에 걸려 든 것은 아니길 빕니다ㅠ.ㅠ

- 명작은 시간이 흘러도 명작이라고 하는데, 이 영화가 명작이 될 수 있을지는 시간이 정할 것이라고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세태가 개선이 된 환경 속에 사람들이 산다면 그냥 돈 많이 들인 쌈마이 영화로 여겨질 테고, 세태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된다면 이 '악마를 보았다'의 수위조차 성에 차지 않게 되겠죠. 음, 시간이 지나도 애매한 영화가 되는 건 마찬가진가_no( <- )

P.S : 기간 내에 티켓팅하면 선착순으로 포토북을 준다기에 뭔가 했더니 그냥 윈저 광고잖..._no

P.S2 :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경찰 쪽 반장으로 나온 천호진이 제발로 걸어들어온 이병헌을 다시 놔준 이유가 대체 뭐죠?;; 그전 이병헌의 장인과 얘기를 나눈 씬을 보면 이병헌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지는 이미 알고 있는 거 같고, 그렇다고 이병헌이 구속된 후 탈출한 거도 아닌 거 같고, 국정원이 손을 쓴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제발로 걸어들어 왔을 때 연쇄 치상 사건(?)의 중요 용의자로 그 자리에서 구속되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뭔가 놓쳤을 지도 모르겠지만 간혹 어라? 이게 어떻게...?? 싶은 부분이 있었어요;; 이것도 잘린 장면 때문인가?_no

P.S3 : 그러고 보니 모처럼 등장한 커플 브레이커 무비(?!)인데 절대로 극장에서 안 보면 후회할 데이트 무비라고 할 걸 그랬나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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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제이드 2010/08/15 17:02 # 답글

    그저, 감사합니다. 배두나씨 팬이라 '복수는 나의 것'을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미루고 미뤄서 안봤는데, Sion님 리뷰를 보니 안 보는 게 좋겠다고 마음이 굳어지네요. 자꾸 잔인함을 얘기하며 복수는 나의 것이 언급되기에 무슨 내용일까 했는데 할복에; 신장을 먹는 장면까지 있을 줄은 몰랐어요.
    아 그리고 "김지운+이병헌" 만 보고 영화를 선택한 사람으로선 또 우울한 게.. 영화채널에 나오는 홍보용 영상이 너무 편안한 스릴러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매끈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인데요. 잔인한 영상을 티비에서 보여줄 수 없다면 좀 객관적이고 명료하게 잔인한 정도를 묘사했으면 어떨까 싶어요. 저처럼 깜놀하는 사람들이 없게 하려면(혹은 잔인함에 놀라도, 알고 봤으니까 내가 참아야지 할 수 있게)말이예요.
  • Sion 2010/08/15 17:23 #

    방문 감사합니다^^ 배두나씨의 팬이시고 예쁜 모습만 간직하고 싶으시다면 안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예를 든 것 중 송강호의 전기 고문에 오줌 지리는 사람이 배두나라..._no

    확실히 제한상영가 소동으로 이슈가 조금 되긴 했지만 광고 자체는 여태까지 있어왔던 복수 스릴러인게 사실이죠;; 근데 그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게 영화 본편의 관람등급이 어쨌건 현재 법령상 예고편은 무조건 '전체 관람가'로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괴리도 심해지고 관객은 낚이게 되고_no(이부분은 홍보팀이 고의로 낚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요;;) 그래서 예고편도 최소한 전체 관람가와 미성년자 관람불가 두 버전을 만들 수 있게 하자란 논의도 진행 중이라는 듯 하네요. 하여튼 애정이 대단하시군요. 보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는 그 정도면 나가버렸을 듯요_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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