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아이들(闇の子供たち) by Sion

어둠의 아이들
에구치 요스케,미야자키 아오이,츠마부키 사토시 / 사카모토 준지

3월 중순에 씨너스 이수의 시사회에서 보고 왔습니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폭력이 횡행하는 이 현실에 정의의 영웅이 맞서기를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폭력에 맞서는 것은 무능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현실이 시궁창'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그 무능의 얄팍한 정론은 틀린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지만 폭력적인 현실을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야자키 아오이가 분한 케이코나 NGO처럼 말입니다. 케이코와 같은 캐릭터는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예를 들어 '하얀 거탑'의 최도영(이선균) 같은 캐릭터랄까요? 이들은 양심과 정론을 유일한 무기로 삼는데, 그 갸날픈 날이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현실의 모순과 부딪히며 예기치 못한 상처와 또다른 형태의 폭력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케이코가 심장병에 시달리는 아들을 살리고 싶어하는 부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것처럼 말이죠.
'사진가의 딜레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피사체란 현실 앞에서 사진가로서의 사명을 우선할 것이냐,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우선할 것이냐의 딜레마를 말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 '굶주리는 수단 소녀'일 것입니다. 굶어죽어가는 아이를 노려보는 독수리로 대변되는 이 사진을 촬영한 사진가는 사람들로부터 사진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부터 구했어야 한다는 비난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그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3개월 후 자살하기에 이릅니다. 에구치 요스케가 분한 난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케이코에게 현실을 좀 더 알라고 큰소리치지만 정작 그는 눈앞에 둔 아이 한 명조차 구할 수 없었습니다.(위에서 하얀 거탑 예를 들고 생각해 보니 일본 원작 '하얀 거탑(白い巨塔 ,2003)'에서 에구치 요스케가 사토미 슈지(=한국판 최도영) 역이었군요;; 자이젠 고로(=한국판 장준혁) 같은 캐릭터가 부러웠나?;;)
영화는 똑같이 아이들을 위한 일이지만 그 방법이 너무나도 상이한, 그래서 때로는 상충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얄팍한 정론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했지만 결국 눈앞의 아이를 구한 것은 케이코였어요. 난부라고 다른 것은 아닙니다. 그는 산 채로 심장을 빼앗기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구하지 못했지만, 요다(츠마부키 사토시)의 사진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심층취재로 매매춘 및 장기밀매 조직을 무너뜨리는데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쪽의 도움도 받지 못한 사각지대에서 죽어가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병에 걸려서도 끝까지 센라를 부르다가 죽은 아이처럼 말이죠. 사실 영화적 스토리 상으로는 유기적이지 못하고 소외 당한 캐릭터였지만, 그렇게 소외 당한 부분이 어쩌면 누구의 눈에도 띄지 못하고 죽어가는 아이들의 현실을 잘 살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시사회에서 무려 이 영화를 수입한 장본인이 일반적인 영화로서 재밌다고는 자기 입으로도 말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 부분이 다소 아쉽기는 했습니다. 그 후에 본 작품이긴 하지만 '허트 로커'를 비롯해 '작은 연못' 등을 보면 영화적인 흥미까지 놓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하지만 일본에서 근 10년 전 발간된 원작 소설이 44만부, 영화 또한 2억7천만 엔의 흥행 수입을 내 성공(제작 쪽에서 당초 목표했던 게 잘 해야 1억이었다니;;)했던 걸 보면 국가별로 영화를 보는 방식의 차이나, 당시의 화제성 그리고 그 이슈를 소화하는 방식의 차이일까 싶기도 하네요;;

원작자인 양석일도 처음 영화화 하자는 얘기를 들었을 때 여태껏 자신의 작품들('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피와 뼈' 등)이 영화화가 많이 되는 편이긴 했지만, 이 '어둠의 아이들' 같은 경우는 영상화 자체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한 텍스트인데 겁도 없이 덤벼들어 좀 허헛;; 했다고 했습니다.
양석일(梁石日) 사인(원작인 '어둠의 아이들' 소설)

그는 각종 인터뷰 등에서 이 소설이 무엇보다 단순한 고발에만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에 중점을 뒀다고 역설했습니다. 가격이 매겨진 아이들에 대한 동정이나 단순 고발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선진국(여기서는 자국인 일본) 스스로의 문제로 끌어안는 진일보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환한 빛 속에서는 어둠의 세계가 잘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그 어둠이 결코 없어지거나 없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아무튼 그런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 이른 바 일본에서 사회파 감독으로 분류되고 있는 사카모토 준지입니다. 김대중 납치 사건을 그린 영화 'KT'와 우리나라에서 극우로 분류되는 '망국의 이지스(亡國のイ-ジス)' 등으로 유명한 감독인데 작품들이 성격을 종잡을 수가 없어 어떤 걸 추구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인터뷰를 보면 좌우를 안 가리고 인간이나 사회가 가진 '결여'에 천착하는 것도 같지만 말이죠. 하지만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뭐랄까 메세지를 위해 재미를 희생하는 타입(?)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 감독인 사카모토 준지(阪本順治) 사인('어둠의 아이들' 일본판 스토리 보드) -

어쨌건 '어둠의 아이들'로 돌아와서. 이런 영화를 접하게 될 때 아무래도 가장 먼저 걱정되는 건 소재주의의 함정일 겁니다. 예를 들어 아동 포르노에 대한 고발 기사를 낸 뉴스가 본의 아니게 아동 포르노 정보에 대한 발신원 역할을 해버리게 되는 그런 케이스 말입니다.
- 오랜만에 '마린 블루스' 재활용;; 뭐 이제는 본의 아니게가 아니라 시청률을 위해 은근슬쩍 대놓고 다루기도 하죠;; -

물론 이 영화는 감독이 인터뷰 등에서 여러 번 밝혔다시피 성매매 장면 촬영 시 아역 배우들과 성인 배우들이 최대한 따로 따로 연기하도록 장면 설계를 했다고 합니다. 피치 못하게 한 공간에 있는 장면을 촬영해야 할 때도 최대한 성인들의 맨몸을 보지 않게 시선 처리를 하고요.

그런 노력은 가상한데... 사실 이런 선정적인 부분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 거의 전적으로 좌우되는 부분이라 뭐라고 말하기 힘드네요;; 아얘 이런 세계가 존재함을 몰랐던 사람들 중에 인간답게 분노하고 뭔가 도울 방법을 찾는 사람들도 있겠고, 솔직히 대부분은 그냥 '아, 불쌍하다. 저런 나라 안 살아서 다행이야' 한 번 하고 잊겠지만, 극소수는 '오옷, 태국에 가면 애들을 남녀 안가리고 골라가며 3P, 4P를 맛 볼 수 있단 말이지? 이번 휴가는 태국이다!'랄 변태들도 분명히 있을 거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도 없듯이 이런 문제를 그냥 쉬쉬 할 수도 없고 말이죠;;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사각지대의 소외되는 아이를 포함해 더 많은 아이를 살리고 싶다면 두터운 정론으로 무장하고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완전치 못하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여기서 손을 놓는다면 언젠가는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피해자가 될 지도 모릅니다. 동시에 개인으로서는 언제 미필적 고의의 가해자가 될 지도 모를 상황과 맞닥뜨릴 지 모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거울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P.S : 2008년부터 무기한 휴식에 들어간 '사잔 올 스타즈(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쿠와타 케이스케(桑田佳祐) 단독이긴 하지만 엔드 크레딧에 흐르는 '현대도쿄기담(現代東京奇譚)'도 챙겨들어야 할 노래(영화가 2008년작이니까요;;).

P.S2 : '굶주리는 수단 소녀'를 찍은 사진가 케빈 카터(Kevin Carter)의 이야기와 관련해, 사실은 알려진 것과 좀 다르다고 하는 군요. 자세한 것은 한겨레의 '다시 케빈 카터를 위한 변명'이란 기사를 읽어보시길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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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ealove 2010/04/29 09:11 # 답글

    감독과의 대화 시사회장에서 이 영화에도 다 담을 수 없는 더 많은 일들이 많았다하더군요... 분노의 끝을 느끼게 했던 영화입니다.
  • Sion 2010/04/29 12:12 #

    저는 분노보다는 포기하게 만들더군요_no 결국 우주는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엔트로피 법칙까지 떠올렸다면 과장이 심하려나요;;(먼 산)
  • 김사츄 2010/04/30 11:08 # 답글

    도쿄기담 좋죠. 엔딩 크레딧에서 들을 때 고막이 쫄깃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원작에 대한 이해 없이 영화를 봐서인지, 난부의 (생략)과 거울에 붙여놓은 기사들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크레딧 구경하면서 한참을 생각했었네요.
    네, 결국 거울에 비치게 되는 것은 저 자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사츄 2010/04/30 11:09 #

    생각해 보니 바로 이해하지 못했던 건 제 머리가 안돌아가서인 것 같기도 하고-_-;;
  • Sion 2010/05/03 00:38 #

    고막이 쫄깃해지는 느낌 좋네요 ㅎㅎ 거울에 비치는 장면은 그냥 제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 뿐이지 진짜 그런 의미로 쓰인 건지는 알 수 없네요_no 그러니 자학하실 필요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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