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Entre Les Murs : The Class) by Sion

클래스
프랑수아 베고도 ,에스메랄다 우르타니 ,라셀 레귈리에 / 로랑 캉테

3월 25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있었던 '클래스'의 시사 및 GV에 다녀왔습니다. 서태지M관의 서태지닷컴 6차 상영회의 일환이기도 해서 신청했지만 이번에도! 또! 떨어졌길래 "이런 제길! 그렇다면 VIP카드를 세트하고 턴 종료!+_+( <- 유희왕 톤으로 )"라는 근성으로 보고 왔습죠, 예.ㄱ-(묘한데서 근성부린다;;)

2008년 제6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프랑스의 한 학교의 학급에서 벌어지는 한 학기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학급은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이민자들이 사는 곳이기에 갖가지 인종들이 섞여 있어요. 불법 체류자들까지 있어 경제적으로도 풍족치 못 하고요. 안 그래도 질풍노도의 시기일 아이들은 학급 안에서 자기들끼리, 그리고 선생님들과 여러 충돌을 일으킵니다.
이 부분은 영화의 카피가 가장 정확히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르쳐봐야 알죠, 울화통 터지는 거" - "배워보면 알죠, 말 뿐이라는 거"

영화는 프랑스 교육에 대한 일면을 보여줌으로서 그 장점과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부분은 감독이 GV에서 직접 '이 영화의 교실은 필요에 따라 재구성한 픽션이며 프랑스 교육 전체를 대표하는 케이스도 아니니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프랑스의 평범한 교실과 교육이 이러리라고 일반화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줬으면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좀 조심스럽습니다만;; 사실 감독이 영화를 만들며 가장 바랐던 부분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의견을 교환하는, 토론의 그 빛나는 한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저도 보기 전까지는 프랑스 교육 현장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고 예상을 했기 때문인지, 감독이 직접 이 영화는 픽션이며 의도된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라고 말하는 건 좀 당황스러웠네요;; 하지만 인위적인 BGM도 없고 학교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 제한된 카메라 등 만듬새 자체는 다큐멘터리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철저히 시나리오에 따랐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감독의 얘기에 의하면 1차로는 한 학생을 중심으로 감독 스스로 시나리오를 썼고, 2차로는 그 시나리오와 흡사한 이야기를 이미 책으로 낸 작가가 있어 그를 주인공인 '프랑수아 선생님' 역에 캐스팅하며 같이 시나리오를 수정했고, 3차로 오디션으로 선발한 실제 중학생들과 1년 여의 워크샵을 가지며 세부 시나리오를 조율한 것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로 보이는 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 감독인 로랑 캉테(Laurent Cantet)의 사인 -

실제 촬영에서도 이 시나리오를 엄격하게 적용했다기 보단 기본적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상황과 방향을 주고 교사와 학생이 가능한한 자유롭게 대사를 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대신 그렇게 촬영을 하다가 감독이 생각한 상황과 방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버리면 바로 촬영을 중단하고 다시 설명한 후 재촬영에 임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다큐멘터리에 버금갈만한 사실적인 이야기와 연기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감독도 이 결과물에 상당히 만족했는지 다음 작품에서도 이 방식을 활용하고 싶다고 했어요.

카메라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지만, 반대로 학급 안에서의 카메라 워킹은 액션 블럭버스터도 저리가랄 만큼 엄청 빠른 호흡으로 움직입니다. 총알처럼 말을 뿜어내는 학생과 선생, 그러니까 토론자들 사이를요.

그 격의없다 못해 저건 혼돈의 카오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뱉어내는 교실의 모습은 학생시절을 겪은 저로서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제 가르칠 일밖에 없는 나이가 된 지금으로서는 한국이 안 저래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 정도였습니다(쿨럭;;). 원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뭐 이런 거죠_no

그러나 주인공인 프랑수아 선생님은 그 혼돈의 카오스에서도 명확하게 원칙을 잡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을 향해 악성 루머를 만들든, 욕을 하든, 지들끼리 시비를 걸어 수업을 방해하든 간에 일단 감정적인 반응을 자제합니다. 그리고 이성을 총동원해 그 아이가 상황에 적합한 올바른 언어를 사용할 때까지 끈질기게 되묻습니다. 이 추궁은 체벌과는 다른 의미에서 집요할 정도라 그 아이의 입에서 적어도 겉으로라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말을 하거나, 자기 스스로 잘못된 표현을 교정할 때까지 계속되더군요. 오죽하면 아이들의 극성이 워낙 지랄 맞아 보여 '저건 좀 맞아야겠다;;'란 생각이 든 적도 있었지만, 집요하게 되묻는 교사를 볼 때는 '저건 그냥 한 대 맞고 마는 게 편켔다;;'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아~ 정말 네이티브 한국적인 생각이다_no ( <- ))

이는 프랑수아가 국어(프랑스어) 교사여서기도 하겠지만, 정확한 언어의 사용을 전재하지 않고서는 그런 방식의 교육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서구의 토론식 수업 말이죠.

사실 인터넷에서도 싸움이 나는 많은 경우 중 하나가 단어 하나를 서로 자기식대로만 해석해서 아니겠습니까;; 이런 쓸데없는 싸움과 낭비, 건전한 토론으로 가기까지의 번거로움이 규모가 커지면 그 사회의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교육에서부터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정확한 언어 사용이 필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 의견을 정리해 말하고 남을 설득하는 데에도요. 뭐, 저는 20세기 한국식 교육을 받은 한국 사람이니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프랑수아는 이런 생각으로 원칙을 세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내에서는 결국 이 방식의 수업에도 한계는 옵니다. 학생들의 등살에 감정적으로 폭발해버린 프랑수아는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말을 해버리고, 평소 교내 문제아였던 슐레이만은 퇴학을 당하게 되지요. 그리고 온갖 어려운 우여곡절 끝에 학기말. 총알처럼 말이 횡행하는 이 영화 내내 화면에 알짱거리면서도 단 한마디의 대사가 없어 오히려 눈에 띄던 한 소녀가 프랑수아에게 다가와 낮게 말합니다.

"저는 이번 학기에 배운 게 없어요."

아무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수업이라 하더라도 토론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바로 그 한계를 퇴학당한 문제아 슐래이만과 마지막 소녀가 보여주었습니다. 언변이 없는(혹은 그럴 소신이 없는) 그녀는 학기 내내 제대로 된 말 한마디 할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배운 게 없을 수밖에 없죠. 딱히 지식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말입니다.

감독은 토론의 그 빛나는 순간을 잡고 싶다고 밝혔으나, 동시에 그 빛나는 순간으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들이 존재함을 명확히 했습니다. 타자가 보기에 아무리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교육 시스템에도, 아니 시스템이라면 한계를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냉혹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연장선 상에서 감독은 슐레이만의 퇴학과 불법체류자 부모의 추방이 결정된 아이의 후일담이 극중에 다루어 지지 않고, 극 마지막에 선생과 아이들의 사이가 다소 황급히 봉합된 것처럼 보이는 축구 장면이 들어간 건, 자신이 속한 시스템의 실패를 애써 외면하고 잊고 싶어하는 구성원들의 현실 도피라고 말했습니다.

영화의 매력과는 대척점에 서있는 문장이지만, 퇴학당한 문제아 슐레이만이 문신으로 새긴 코란의 문구가 그래서 무겁게 다가 옵니다.

"네 말이 침묵보다 중하지 않다면, 침묵하라."

그렇기 때문에 한 학급을 매개로 서구식 토론 문화의 선기능을 유감없이 보이기도 했지만, 흔히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와 서구식 토론 위주의 수업에 대한 환상을 갖는 - 그 자체가 환상이란 게 아니라 단순히 그것만 도입되면 교육 문제가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안일한 생각을 말합니다 - 사람들에게 어떤 냉혹한 현실의 한계를 일깨워 주는 영화이기도 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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