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언맨'은 참 영리한 영화입니다. 헐리웃 히어로 영화의 왕도라고 할 수 있는 좋은 점을 모두 취함과 동시에 자기 반성을 덧붙이길 잊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 그 반성이 조금 얄팍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사실 원작 코믹 '아이언맨'이 가장 미국적인 반공영웅으로 태어났다고 알고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이정도로 21세기에 발맞추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영화 '아이언맨'이 작품으로서 감상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질투의 대상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우선 아이언맨 수트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영화의 모든 소재가 남자들이 어린 시절 환장했던 조립식 프라모델과 조립도구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과학상자와 라디오 키트도 빼놓을 수 없죠. 개인적으로는 아이언맨이란 강철수트보다 그걸 제작하기 위해 지하실에 있던 설계 디바이스들에 맛이 가버렸습니다. 수많은 LCD와 시스템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청사진, 그 도면을 자동적으로 3D화 하여 입체영상으로 쏘아주고 그 영상을 실제 만져가며 고칠 수 있다는 시스템적 센세이션, 대화하듯 말할 수 있는 컴퓨터 집사 '쟈비스'와 애완동물(?) 같은 로봇 등 오히려 그 옆에 늘어선 아우디의 수퍼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지경입니다. 사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그 지하실 자체가 심리적으로 남자들이 바라마지 않는 '동굴' 이미지의 형상화라 볼 수도 있겠죠.

호쾌한 '난다!'는 체험 역시 질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코믹 원작의 후천적 히어로로서 자주 비견되는 배트맨의 경우 비행이 주요정체성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의 경우 처음 설계 개념부터 비행이 들어있었죠. 그 과정에서의 실수들이 영화에 코믹하게 그려집니다(그 실수들에서 보여주는 타고난 맷집(!) 때문에 토니 스타크도 금강불괴의 선천적 히어로라고 하시면 할 말은 없습니다;;).
이왕 배트맨 이야기가 나온 김에 비교해 보자면 아이언맨은 배트맨보다 더 확실히 돈지랄(...) 히어로가 어떤 건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코믹 원작은 잘 모르지만 영화판의 이미지로요). 한술 더 떠서 아이언맨은 배트맨처럼 가면으로서의 돈지랄이 아닌 실제로 그 생활을 즐기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
배트맨은 - 특히 새로운 시작인 '배트맨 비긴즈'에 와서 더 그런 것 같은데 - 언론이 집중되거나 사람들의 눈에 띌 때를 제외하고는 생활에서 그리 돈많은 티를 내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배트맨이란 존재에서 더 멀어지기 위해, 브루스 웨인이란 졸부 도련님 가면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만 티를 낸다는 느낌?
그러나 아이언맨은 눈치채신 분도 계시겠죠? 이 영화에서도 눈에 잘 안띄는 장면이지만, 비서인 페퍼 포츠와 춤추는 파티에서 마티니 두잔을 시키고 바 위의 팁 글래스에 100달러짜리 지폐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집어넣습니다. 그 전에는 당연히 1달러 짜리 지폐만 들어있던 잔인데 말이죠. 그 100달러 짜리를 버리는(!) 폼이 어찌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지 저도 두번째 영화를 볼 때에야 알아챘네요. 아마 1000달러 짜리 지폐가 존재했다면 째째하게 100달러 짜리가 아니라 그걸 집어 넣었을 듯;; 연기파라는 주인공의 호연 덕이기도 하지만 이런 작은 동작 하나만 봐도 토니 스타크란 캐릭터가 생활에서 돈이란 것을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변신(?) 프로세스도 배트맨의 경우는 혼자라도 수트를 못입어 출동못하는 경우야 없지만, 영화에서도 적나라하게 나오듯 아이언맨의 경우는 지하실 시스템이 없으면 아얘 혼자 입고 벗는 것도 불가능하지요;; 또 배트맨은 몸에 지닌 자체적 실력에 도구들이 플러스 알파가 된단 느낌이지만, 아이언맨은 수트가 없으면 솔직히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 물론 히어로로서요. 사막 한가운데서 원자로를 만들어 내는 두뇌를 생각하면 일반인이랄 순 없겠습니다만...(먼 산)
그런 의미에서 "I'm Batman"이란 대사의 배트맨은 돈지랄 도련님 브루스 웨인이나 다크히어로인 배트맨 모두 서로에게서 서로를 숨기려는 가면이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영화 마지막 "I'm Ironman"이라던 아이언맨은 돈지랄 카사노바 토니 스타크도 호쾌한 히어로 아이언맨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진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황당하게 말하자면 끝까지 이성애자인 척 하는 동성애자와 당당히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의 차이?(<- 일부러 황당하게 말하는 이유가 뭐냐_no) 그러고 보면 배트맨과 아이언맨은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방법도 정반대에 가까웠죠. 둘 다 공통적으로 갑부에, 그 돈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효율 나쁜(?) 후천성 히어로지만 이런 차이를 인식하며 보는 것도 재밌지 않나 싶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바톤을 이어받아 '다크나이트'가 개봉할테니까요.

결론적으로 '아이언맨'은 진정한 아메리칸+과학 히어로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군수산업 - 테러리즘 - 아이언맨 - 아이언몽거 로 끊임없이 보여주는 과학으로 인해 생긴 부작용을 더 고등한 과학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 그리고 거기서 더 큰 부작용이 생기는 무한 고리를 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심플하게 힘에는 더 큰 힘으로 맞서 정의를 지키겠다는 아이언맨의 업그레이드 개념만 봐도 좋은 의미 나쁜 의미 둘 모두에서 순정품 아메리칸 히어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입장이 논란의 여지가 큰 건 사실이지만 영화 중간 굴미라 뉴스에서도 국제 사회가 정의보단 '정치적 입장'으로 대학살에 손을 놓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세계 각국이 '정치적 입장'으로 외면하는 이런 현실 자체가 미국 식 정의라는 오지라퍼(?)가 끼어들 여지를 주는 것이겠지요.
이 후 아이언맨이 나타난 굴미라의 경우는 '잉센'이란 마음의 빚에 기댄, 일종의 사적구제에 가깝습니다. 원론적인 의미에서의 '정의를 위해서'라고 보긴 힘들어요. 그러나 저는 '내가 저지른 짓 내가 수습하고, 내가 빚진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겠다는데 너희가 날 말릴 근거가 있나?'란 토니 스타크의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확고한 행동원칙에 뭐라 변명할 거리가 궁색한 게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 역시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로 무한 루프되어 돌아갈뿐입니다만...
엔드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쿠키로 '닉 퓨리'가 등장해 마블 히어로 조직인 '어벤져스'를 언급함으로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는 앞으로 더욱 재밌게 되었습니다. 2011년에 '어벤져스'가 제작영화 목록에 올라있고, 당장 좀 있으면 개봉할 '인크레더블 헐크'에 토니 스타크가 등장한다고 하더군요. DC에서도 얼른 '저스티스 리그'를 정식 발표해 히어로 무비 관객들을 불타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 유쾌한 '엄마친구아들' 토니 스타크의 뒷 이야기를 어서 볼 수 있길 바라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P.S : 원작과 영화 '아이언맨'에 관해 상세한 사항은 액화철인 님의 포스트를, '어벤져스'와 그밖의 히어로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SuperHero Crossroad를 참조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SuperHero Crossroad는 트래픽이 자주 터지니 밤 12시 직후에 접속해 보시길;;
P.S2 :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Rock'n Roll Dance'에 샘플링으로 쓰이기도 해 엄청 친숙한 AC/DC의 'Back in Black'으로 영화가 막을 열어그런지 영화 전체의 스코어들이 즐겁기 이를데 없었습니다-_-)b
P.S3 : 마블 영화 차기작들에 관해서는 렉스 님의 포스트를 참조하시면 좋을 듯 -> 클릭
덧글
맹! (콰직
(그럼 휴이, 듀이, 루이는 원더 보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