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일본 3집(SEOTAIJI AND BOYS III - 渤海を夢見て) by Sion

- 사진들은 클릭하면 다소 크게 보입니다 -

어제에 이어 이번엔 일본 3집을 맛뵈기해 보겠습니다. 사실 중고를 샀던 일본 1집과는 다르게 이 일본 3집은 어떻게 어떻게 남아있던 초회특전 새 제품을 샀던지라 이걸 뜯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무지하게 고민했었습니다;; 뭐 물론 수십, 수백을 호가하는 비틀즈 등등의 레어한 LP들에 비하면야 싸다고(?) 해야겠지만 어쨌건 제가 가진 CD 들 중엔 제일 비싸게 주고 샀으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지름의 철학(...)이라고나 할까, 읽지 않을 책은 사지 않고, 보지 않을 DVD는 사지 않으며, 듣지 않을 CD는 사지 않는다... 즉, 제 역할을 누리지 않고 단지 쌓아놓을거면 사지 않는다 라는 제 기준에 의거 과감히 개봉해 버렸습니다_no ...뭐 물론 밑에 부분만 살짜쿵 뜯어서 겉비닐도 보존해 놓고 있지만요*-.-*( <- 말만 번드르~하고 역시 소심하다 )

그 오픈 직전이 맨 위의 사진입니다. 오른쪽에 검은 스티커로 '초회특전 서태지와 아이들 포토스티커 1장'이라고 쓰여있군요-_-)b
드디어 비닐을 벗기고 띠지를 펼쳐보았습니다. 앞면에는 '한국에선 발매 당일 100만장 돌파!!「SeoTaiji and Boys III」는 그들의 뜨거운 생각이 담긴 메세지 앨범입니다.'라고 쓰여 있으며 띠지 뒷면에는 일본 1집의 광고가 작게 들어 있습니다.

1995년 1월 21일 발매된 이 앨범에 수록된 곡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SEOTAIJI AND BOYS III - 渤海を夢見て(서태지와 아이들 III - 발해를 꿈꾸며) - (ARCJ-7)

1. Yo! Taiji
2. 渤海を夢見て - 발해를 꿈꾸며
3. 子供の瞳で - 아이들의 눈으로
4. 敎室イデア - 교실 이데아
5. オレの勝手だろ - 내 맘이야
6. ジキル博士とハイド - 지킬박사와 하이드
7. 永遠 - 영원
8. 渤海を夢見て(インストゥルメンタル) - 발해를 꿈꾸며(INSTRUMENTAL)
9. きみを忘れようとして - 널 지우려 해
정가는 일본 1집과 마찬가지로 세금 포함 2300엔.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본 1집과는 달리 수록곡과 순서 모두 한국 3집과 완전히 동일하며 아트웍 역시 다소 미세한 색감의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99% 똑같습니다. 나머지 1%라 봐야 반도음반 이외에 일본 발매사인 안티노스 레코드와 소니뮤직 엔터테인먼트 정도가 영어와 일본어로 더 쓰여져 있다는 정도군요. 일본 1집과 마찬가지로 앨범 자체의 곡 순서와 가사 역시 모두 한글로 적혀 있습니다.
이 사진은 제가 찍은 게 아니라 전에 결렬되었던 한국 분과의 거래 중 받았던 사진인데 위 CD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CD 프린트도 똑같아요;; 다만 이 음반 프린트는 일본 초도 생산품이 한국반과 똑같이 총천연색 비둘기이고, 재생산품이 밑에 보이는 청백색의 단색 프린트라고도 하던데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제가 가진 초회특전 동봉판은 윗쪽 CD처럼 한국반과 같은 프린트 입니다.

솔직히 여기까지만 보면 도무지 살 이유가 별로 없어보이는 앨범이지요;; 일본 1집과는 다르게 한국반과의 차이가 거의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3집의 존재의 의의는 앨범 자체라기 보단 B4 크기의 일본어 가사집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초회특전인 포토스티커도 있긴 합니다만;;).

일단 그런 의미에서 포토스티커부터 보고 넘어가죠;;
......아니 뭐 물론 고즈넉한 갈색 톤이 좋긴 좋은데 부록이 이거 한 장만 들어있었으면 정말 울어버렸을거 같...|||_no|||

개인적으로 잘 샀다고 생각이 든 건 바로 이 밑의 일본어 가사집이었습니다. 크기는 B4 정도 되는데 가로가 약간 더 긴 듯하군요. 차곡차곡 접혀서 한국반과 똑같은 북릿에 끼워져 있습니다.
앞면은 반으로 나뉘어 한쪽에는 곡목이 적혀있고, 다른 반쪽에는 일본어로 번안된 가사가 적혀있습니다. 일본 1집과의 차이점은 일본 1집의 경우 곡목을 한국어 발음 그대로 일본어로 옮긴데 반해, 이 일본 3집 일본어 가사집의 곡목은 위에서 보이다시피 한국어 발음을 옮긴게 아닌 일본어로 뜻을 옮겨 작문한 방식이라는 겁니다. 번안 가사는 카와무라 토모요(川村倫世)란 사람이 일본어로 옮기고, 서태지 자신이 감수했다고 합니다.
뒷면은 깨알같은 글씨로 가득 차게 쓰여진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게 꽤 재밌었는데 음...뭐랄까 서태지와 아이들의 일본 팬이 나름대로 그들을 분석한 글이랄까요?^^;(확실친 않지만 내용이 다소 애매한 면이 있는 걸로 보아 전문비평가는 아닌 듯;;)

에~또 그래서 그냥 독해 연습하는 겸해서 한 번 해석해 보았습니다;; 한 번 인터넷을 슬쩍 검색을 해봤는데 해석된게 안보이더라구요_no 물론 2급 정도 밖에 안되는 주제에 무리해서 해석해 본 것이니 본의 아닌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 일본 3집에 들어있더라~ 정도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이틀이나 붙잡고 해석해 본 거니 어여삐 봐주시면 더 좋고_no( <- ) 문장 표기나 기호까지 최대한 원문 그대로 옮기려고 노력했...지만 어려웠던 부분은 대충 소설쓰고 넘어갔으며(...) '역주'는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 달아본 것 들 입니다-_-)/ 물론 아래 글은 11년 전인 1994~5년 현재 시점으로 읽어주셔야 합니다.
SEOTAIJI AND BOYS III

경쾌한 비트와 시원스런 한국어 랩, 그 틈을 메우며 작렬하는 태평소(한국의 차르멜라(Charamela)형 더블 리드(Double Reed) 관악기) 소리.(역주1
: 원문에는 태평소의 다른 이름인 ‘호적(胡笛)’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저나 이 글을 볼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리라 생각해서 태평소로 표기. 차르멜라(Charamela)는 기독교 유입시에 성가들과 같이 일본에 들어온 말로 어원은 포르투갈 어면서 또 형태는 근대에 중국 태평소가 전래된 후 현재의 모양이 된 일본 나팔의 일종이라고 하는 거 같음. 우리나라 엿장수 가위 소리처럼 라멘 포장마차들이 돌아다니며 주로 불었다는 듯.
)

내가 서태지와 아이들을 「자각하게된 것」은 사실 꽤 늦어 93년 가을의 일이었다. 서울시 최대급 음반점 「Music Land」에서 국악(한국의 전통음악) CD를 물색하던 와중 그 매장에서 흘러나오던 소리에 놀라버렸다. 곧바로 매장 여점원에게 어색한 한국말로 물어보았다. 『이거(음악이 나오는 허공을 가르키며) 뭐에요?』 『하여가 에요. 서태지의.』 그리곤 한껏 「당신 그것도 몰랐던 거야?」라는 듯한 시선이 쏟아졌던 것도 기억에 남아있다. ‘이봐! 난 여행자라고!’ 분개해가며 내 힘으로 “가나다라 순서”대로 꽂혀있던 음반들 가운데 「SeoTaiji & Boys II」을 찾아냈다. 「하여가」는 무려 한자로 「何如歌」, 그 해 여름과 그 한 해 차트를 석권했던 앨범이었던 것이다.

나 자신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강태환이란 즉흥음악 색소폰 연주자, 김덕수(「하여가」에서 태평소를 불었던 것이 그이다.)의 사물놀이(역주2
: 「하여가」의 태평소 파트는 2집 음반 녹음시에 ‘김덕수’, 「마지막 축제」 라이브 콘서트 때엔 ‘장사익’이었음.
), 그리고 무당이자 태평소의 명인인 김석출 같은 사람들의 음악과 만났을 때부터 시작되어 있었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한 것은 전부터 이런저런 형태로 듣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연계되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미 ‘아시아의 누구누구’라고 말할 계제가 아니다. 마치 인디언의 선조가 베링해협을 건너는 모습이 보인 것 같단 생각마저 들었다.(뭣보다 인디언들의 얘길 들어보면 그들의 선조가 아시아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는 듯 싶다) 한국 최초의 본격 랩 그룹이라기 보단, (아마 민족자체가 바뀌는 일 없이 계속된 문명의 주체로서는)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을 대한사람들의 의식의 다층적집합체로서 그들에게 강하게 끌렸던 것이다.(이런 예상은 후에 또 한번 빗나간다)

여기까진 나혼자 멋대로 한 생각이 들어가 있으니까 좀 더 일반적(?)인 소개도 해보자.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국에 있어서「완전한 아이돌」이다. 주 팬층은 10대(즉 초등학교 고학년을 포함) 소녀들이고, 한국 내에 발매되어 있는 라이브 앨범이나 비디오에도 그녀들의 노란 환성이 다소 과잉된 효과음처럼 수록되어 있다. 콘서트장에도 대부분 소녀들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음악성은 적지않은 수의 숨겨진 남성 팬, 그리고 수많은 다른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완전성」이란 것은 그 이전, 즉 80년대 말갛게 뜬 윗물로서 종잡을 수 없던 아이돌 문화(서울 올림픽 전후로는 일본에도 소개된적 있던 것 같은 류의)와 70년대에 항상 한국에 깔려있던 잘 발효된 침전물로서의 록, 메탈, 포크 등의 변증법적 지양(止揚)에 있는 거 같단 생각이 든다.(역주3
: 문맥상 여기서의 지양(止揚)은 단순히 ‘하지 않는다’의 의미보단 ‘어떤 사물에 관한 모순이나 대립을 부정하면서 도리어 한층 더 높은 단계에서 이것을 긍정하여 살려 가는 일’이란 변증법적 개념에 가까우리라 생각해 '변증법적 지양'이라고 해석했음(원문에는 '止揚' 이라고만 쓰여있음). 위에 떠있는 맑은 술로서의 아이돌 문화와 밑에 깔려있는 구수한 술지게미로서의 록, 포크 등의 변증법적 합의 도출이랄까.
) 그리고 그것들을 거듭 댄스, 랩이란 촉매로 단숨에 변화시킨게 그들이다.

1972년(2월) 태어난 서태지(본명 : 정현철)는 그 자신의 음악편력자체가 그를 이야기하고 있다. 만 13세(1985년)부터 밴드를 조직했던 태지(역주4
: 이 부분은 잘 모르겠음(그렇다고 원래부터 빠삭하게 알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_no) 원문에는 확실히 저렇게 쓰여 있지만 여태까지 알고 있는 바대로라면 서태지의 첫 밴드는 중학생 때인 1986년(만 14세) 친구들과 조직했다고 알려진 5인조 밴드 ‘하늘벽’ 일텐데 다소 오차를 보이고 있음(아니면 설마 1985년 12월 겨울방학을 계기로 만들어져서 만들어 진건 85년이고, 활동을 시작한 건 방학숙제 마친 86년 1월부터라거나...(쿨럭;;)) 그리고 보통 ‘하늘벽’ 다음에 바로 ‘활화산’ 활동이 언급되는데, 고1 때 활동했다는 밴드 ‘QUZNISE’도 여기서 처음 들어봤음(저건 어느 나라 말이고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겠음;;) 어느 쪽이 정확한 건진...;;(먼 산)
)는 들국화란 록밴드의 카피로 시작했지만, 그와 동시에 처음부터 작곡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국내 밴드를 중심으로 듣고 있었던 거 같지만 의외로 그의 댄스 음악에 대한 감각은 그런 록밴드 안에서도 힌트를 얻고 있었던 듯 하다(한국메탈이 평범한 한가지 방법으로 다뤄지긴 힘들다는 것에 관해선 음악평론가 유아사 마나부(湯浅学) 씨나 네모토 타카시(根本敬) 씨가 지적하고 있는 대로).

고교1학년에 「QUZNISE」란 메탈 밴드, 그리고 나선 「활화산」에 참가했고, 18세에 “시나위”에 가담하며 그는 베이시스트로서 프로 데뷔를 장식하게 되었다(앨범 「SINAWE four」). 여기까진 순수한 메탈 키드라고 말해도 좋다. 시나위 해산 후 자신의 메탈 밴드를 만들려 하고 있던 태지였지만 아무래도 그때 당시(80년대말~90년대초) 귀에 들어오던 음악이 댄스뮤직뿐이었다. 컴퓨터(Atari)를 도입해 그걸로 작곡을 다시 시작했고, 댄스 컨셉을 강화하기 위해 찾아다니다 발견한 것이 바로 이주노(69년 2월생), 양현석(70년 12월생) 두 사람의 보컬 겸 댄서였다. 92년 3월에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 즉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팀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실로 2년 가까운 준비기간이 있었던 것이다.

80년대말, 일본같이 랩/힙합문화의 세례를 받은 한국이지만 그것이 그다지 흑인음악 전통(에 따라 쉴새없이 투덜거리며 디스(DISS)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랩이라는 단어나 몸짓을 비트와 결합시킨 멀티플한 표현방식은 한국인 자신을 새로이 표현하는데 상당히 큰 힌트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누가 뭐래도 위로는 판소리부터 밑으론 뽕짝(싸구려 전자악기반주를 주로 하여 메들리 형식으로 혼자 노래하며 떠드는 것)까지 「말하기와 연기하는 것」에 있어선 전통과 일상 모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한국인이니까. 그런데 그게 그렇다. 서태지 자신에 의하면 그들의 한국어 랩핑은 하루아침에 한국식으로 된 게 아니라 상당히 연구한 끝에야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 한글 랩은 애초부터(그들 자신조차) 대부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상업적 성공도 기대할 수 없었다. 자음의 종류가 압도적으로 많고, 또 말끝자음과 말머리모음이 프랑스어 뺨치게 연음되는 한국어는 원리상으로야 복잡한 리듬 시퀀스에 싣기 쉬운 언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적용시켜가는 작업은 상상이상으로 음악적, 나아가 문학(?)적 센스가 요구된다. 하지만 이것들에 관해서도 태지 본인은 사물놀이는 과외수업 같은 것을 조금 받은 정도(라곤 해도 Live에선 실연(實演)하고 있음)라고 말하고 있고, 전통적인 판소리 같은 것도 의식하고 접하고 있던 건 아닌 것 같다. 뭣보다 이건 한국인에겐 처음부터 그런 것이 갖춰져 있다고 말한 ‘그’라는 일류의 역설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여담이지만 『일본인이 뿌리를 한반도나 몽고 등에서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민족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대해 그는 한조각 의심의 여지도 없다는 듯이 『오래전 단군(5000년전)부터 여기 있었다』고 단언했다. 확실히 나는 무섭게 일본인다운 의문을 던졌는데 그로부터는 실로 한국인다운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서태지......의 등장과 성공(데뷔앨범 180만장)은 그 후 한국가요계의 방향을 완전히 결정했고 그들 이후 20팀 이상의 랩 그룹이 계속 나오고 있다. 92년 11월「Techno & Live Remix」(미니앨범) 그리고 93년 6월 2집 「SeoTaiji & Boys II」에서는 마침내 랩과 한국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음악(엄밀하게 따지자면 - 궁중악이 아닌 - 민속악)의 융합마저 시도했고, 여기 이르러선 세계에 통용되는(그러나 시장 관계 상 유통되진 못했다), 독특한 민속 랩=대한 랩이 처음으로 확립되는 걸 보았다고 하겠다. 1집, 2집을 커플링하여 원어 그대로 일본시장에 등장시킨 것이 안티노스 레코드(アンティノスレコ-ド)에서 나온 그들의 일본 데뷔작품이었고, 거기서 들려오는 성과는 현재 일본어 랩의 상황과 비교해도 주목해야만 할 것이 있을 것이다. 유입문화로부터 시작해 그걸 자신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자기 것으로 만드는 스피드 그리고 결과적으로 높은 오리지널리티. 과연! 처음부터 「거기」에 있단 말을 듣더라도 일본인에겐 불평할 처지가 안된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한국가요계를 장악했으면서 그들은 93년 12월 콘서트(이 모습은 라이브 앨범과 비디오로 발매되어 있다) 후, 장기간 「휴식기」에 들어간다. 그렇게 자리를 비운 사이, 세계적으로 UB40 등 Lovers 계 레게 붐을 타고 레게 리듬에 한국어를 실은 김건모, TwoTwo 같은 새로운 스타가 등장해버리기도 했지만, 그에 관한 태지의 언급이 참 재밌다. 그는 그 상황을 레게는 벌써 자기들이 패션의 한 요소로 집어넣어서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세 번째 앨범 제작에 집중하고 있어서 짧은 주기의 유행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들이 뿌린 씨앗이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싹을 틔운 것에 기쁠 따름이란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92년 이후 서태지는 그 존재와 부재, 둘 모두를 통해 한국가요계의 대세를 좌지우지 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94년 8월, 드디어 완전부활을 알리는 3일간의 콘서트가 행해졌다. 그간 신작정보를 포함해 모든 정보는 봉인돼있었고, 그들은 사람들에게 대부분 잊혀져버리고 만 것처럼 보였지만, 팬들은 계속 기다려왔던 것이었다(이건 그들이었기에 가능한 비법이었지 한국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도박이기도하다). 콘서트와 동시에 발매된 3집 앨범(통산 5장째 앨범)은 예약만으로 100만장을 돌파했다고 전해졌으며, 그 일본 릴리즈가 이 작품 『SeoTaiji and Boys III』이다. 94년 후반에 이르러 한국가요계의 유행 주기는 그 변화의 속도를 더 하고 있었다. 전통과 랩의 융합(한국에서는 「접목(接木)」이라고 말하는 듯) 시도는 드디어 판소리 랩퍼를 낳았고, 레게에는 한국어 라가머핀(RagaMuffin), 게다가 레어 그루브(Rare Groove) 혹은 스트레이트한 재즈 벡킹을 펼치거나, 엔카 풍으로 흘러가는 기타 위에 랩까지 나오고 있다. 이것들이 매니악하고 아티스틱한 인디계 밴드가 아닌 넓은 의미로 「가요계」가 지닌 재능들이기도 하다는 게 무섭지만, 이렇게 되다보니 「비 서태지적」장르의 추구라는 정반대의 견해마저 생기기도 했다. 일찍이 『VIVO보다 맛있는 건 VIVO 뿐』(한 청량음료의 광고카피. 어쩌면 지역방송이었을지도 모른다)라는 명문구가 있었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쪽의 본가라 할 수 있는 서태지......가 이 앨범에서 보여준 것은 그들의 방식으로 펼친「서태지 뛰어넘기(역주5
: 원문은 超ソテジ, 즉 '초 서태지' 임;; 당시에도 인기가 한창이던 드래곤볼식 표현인건가..._no
)」란 대답일 것이다.

그가 무엇을 할지 그의 다음 한 수는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았다. 음악적으로는 전작들 같은 러브 발라드 풍의 달콤함을 확실히 자제하면서 헤비한 메탈과 하드코어 사운드로 되어있다고 요약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가사가 가진 내용의 무게였다. 카와무라 토모요(川村倫世) 씨에 의해 번역된 가사(서태지 자신이 감수)를 어서 훑어보고 싶다. 한국에는 음악출판물에 대한 심의가 존재하는데 용케도 통과했다고 생각되는 내용(정치적 언급 자체보단 내용을 그 공무원들이 이해했는지 쪽이 더 궁금하다)이다. 태지에 의하면 그런 가사가 반대로 자신들이 해보는 이 시스템에 대한 역 심의의 의미도 있다고 한다. 아마 갑자기 나타난 다른 신인 밴드가 같은 내용의 노래를 발표한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서태지......의 가사에 심의의 간섭이 들어갔다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심의제도 그 자체가 단번에 사회적 관심을 끌어모으는 꼴이 되어버리는 거다. 히라타 사쯔키(平田さつき) 씨에 의하면 이번 앨범에서 실제로 불려지고 있는 노래의 가사는 가사집과도 또 미묘하게 달라졌다고 한다. 게다가 곡 일부에는 역회전에 의한 효과음도 삽입되어 있으며, 그 내용에 의한 일대 소동(역주6
: 물론 ‘피가 모자라’와 ‘사탄 사랑해요’가 들린다던 그 유명한(?) 백워드매스킹 사건;;(아마 교실 이데아 부분이었던 거 같은데...) 뭐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개인적으론 사전정보 없이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설자고 있었는데, 학교 방송부가 틀어준 저 부분이 정말 저렇게 들려서 깜짝 놀라 깼던 기억이 있음;;
)이 있었다는 것 같다(일본식 개그가 자주 한국인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처럼).

이번 작품은 전에 내놓았던 두 작품과는 다르게 생음악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 물론 거듭 말했었지만 LA 스튜디오 뮤지션에게는 우선 드럼부터 시작해 모두 태지 자신이 혼자 녹음했던 트랙을 넘겨주고 그걸 원천으로 개별화(Personalize)해 받았다고 한다. 얼굴은 웨스트코스트지만 마음은 한국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 일본에서 녹음한 부분도 있고, 마지막에 캐나다에서 믹싱했다. 덧붙여서 엔지니어는 메탈리카를 다뤘던 사람으로 그쪽이 휴가중 일 때 무리해서 해 주었다지. 「교실 이데아」「지킬박사와 하이드」도 굉장하지만 누가 뭐래도 앨범의 가장 압권은 아이리쉬 풍 인트로로 시작하는 국내 히트곡「발해를 꿈꾸며」이다.

「발해(渤海 : ぼっかい)」는 역사상의 나라 이름으로서 일본 역사교과서에선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런 나라 이름을 여기 쓴 것 자체로 보아 태지가 동 아시아 전략에 흠뻑 빠져있단 걸 알 수 있다) 조금 설명하자면 멸망한 고구려의 유민이 7세기말에 현재 중국 동북부~연해주에 걸쳐 세운 국가로 당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인 고도의 문화를 가졌었으며 일본과도 「견발해사(遣渤海使)」(역주7
: 견수사, 견당사 같이 일본에서 발해로 보낸 사절단. 발해를 고구려 계승국으로 인식해 ‘견고(구)려사(遣高(句)麗使)’로 쓰기도 했다는 듯. 발해에서도 일본으로 견일본사를 보냈다고 함.
) 같은 것을 통해 교류가 있었다. 그 남쪽에 위치한, 당시 한반도를 통일했던 신라와는 일종의 남북조적인 관계였다고도 일컬어지고 있으며, 한민족 문화권역의 범위가 최대에 이르렀던 시대이기도 하다.

가사로부터도 읽혀지다시피 여기엔 통일에 대한 의지표시와 젊은 세대에 대한 호소가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고유명사로 나오는 것은 「발해」로 상징되는 과거의 나라 이름 하나뿐이다. 통상제작비의 3배 이상의 경비를 투입했다고 하는 CG로 된 아름다운 앨범 자켓 안에도 특히 이 곡에 그려져 있는 장면은 확실히 심볼릭하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그건 어디든지 자유롭게 날아 갈 수 있다. 「발해」의「해(역주8
: 이 부분의 ‘해’는 원문에도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음. 아마 발해의 바다 ‘해(海)’ 자 음과 태양을 뜻하는 한글 ‘해’가 한국어로 동음이의어라는 걸 설명하는 듯.
)」는 「바다(海)」란 뜻과 함께 「해 ․ 태양」이란 의미라고도 한다. 94년 8월 13~15일에 치러졌던 콘서트에서 이 곡이 울려퍼졌을 때, 스테이지에는 거대한 태극기가 게양되었다. 8월15일(광복절) 공연 때는 보도관계자 중에서도 이걸 보고 눈물 흘린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내년이면 해방 50년이 됩니다만...』이란 조금은 완곡한 질문을 그들에게 들이밀어보았다. 「전쟁이란 게 어떤 것인지 그다지 실감이 가진 않는다」고 말하면서 「(구세대는 우리들이 말하는 걸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젊은 세대는 과거보다 미래의 새로운 길을 찾으며 문화의 “해방”에 대해 생각했으면 한다. 정치 ․ 경제보다도 우선 음악을 통해 우리들이 이렇게 일본에 데뷔하기도 했고, 그렇게 오고 가며 서로간의 교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서태지)」고 답해주었다. 94년말 현재 한국은 여전히 일본어 가요 금지 중이다. 이것에 대해 일본측에서는 해금되면 일본색 천지가 될까봐 한국이 무서워하고 있는거다 라고 보는 쪽도 있지만 글쎄 과연 어떨까? 그들의 일본 데뷔 앨범 그리고 이번 작품도 그렇지만 한국어 그대로 일본에 릴리즈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대서특필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자국어로 되어있기에 실현할 수 있었던 수많은 아이디어, 영미 록 씬에 필적할 “설명”이 따로 필요없는 음악 자체가 가진 힘을 믿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어에 꽤 능통한 태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만의 추억」같은 건 팬들에 대한 기분을 노래한 것이니까 더더욱 일본 팬이 늘어난다면 이 곡을 일본어로 노래하는 서비스를 하고 싶네요. 앨범 전체를 그렇게 하는 건 생각해 본 적 없지만요. 미국 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까나』. 최근 한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그들의 노래를 한글로 유창하게 부르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화제인 인터넷 상에서도 “Seo Taiji"라는 이름은 재미한국인들뿐 아니라 특히 LA 등지의 미국인들 간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 3번째 앨범(본 작품)은 아마 단순한 본국(한국)내 판매량에 있어서는 기존 두 작품을 능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의 크기는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인기를 끌었단 면에선 전작들 쪽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번 앨범의 발상 덕분에 우리들보다 윗세대나 정치가에게까지 주목받게 되었다(서태지)』. 어른들이야말로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태지는 역시 보통이 아니다.

한국에서 연예인은 신문 연예란에 밖에 실리지 않는게 보통이지만, 그들은 무려 정치란에 요란하게 실리기도 한다. 정치가들에게「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라는 설문을 받았을 때, 그들은 3위에 랭크되었다. 덧붙이자면 1위는 대통령.

일찍이 「한국 아이돌은 3집으로 끝! 학설(韓國アイドル3作終焉說)」이란게 있었다. 과거 「소방차」(최근 부활했다고도 하지만)를 시작으로 아이돌로 팔리는 그룹은 전부 3집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는 어떤 일종의 징크스이다. 이 징크스는 사실 서태지에 있어서도 맞을지 모른다. 이미 아이돌이라 불리기에는 위험한 힘을 가진 강대한 존재.......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미 다음 작품 구상도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 팬들에게 태지의 메시지를 전해두자.

『(일본에서의)첫번째 앨범을 사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 앨범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더 열심히 할테니 잘 부탁드립니다』. 메시지의 생김새만큼이나 맥빠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비밀 메시지를 하나만 더 전하도록 하자. 여기 노래되고 있다.

「평화」란「우리들만의(역주9
: 이 부분은 원문에도 한글로 표기되어 있음. 뒤에 일본어로 뜻이 따로 붙어 있긴 함.
)」평화라고 한다. 「우리(역주10
: 이 부분은 원문에도 일본어 뜻풀이 없이 한글 '우리'로만 표기.
)」가 가르키는 범위, 그것은 당신 자신과 서태지......의 관계로 정해진다고 할 것이다.

한국무속음악애호가 미야코시 코우키(宮腰浩基)

Taiji Boys F.C. IVY JAPAN
우편번호 153 도쿄도 메구로구 카미메구로 2-25-13
엠스빌딩 동302 액트세븐(주) 안
아~ 역시 난 소설을 너무 잘써-_-)b 외국어 해석할 때만...|||_no|||

나름대로 우리와는 또 다른 일본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게 신선하고 재밌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국무속음악애호가라 그런지 이 사람 환빠야?!;; 서태지...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까지 거의 찬양에 가까운 어조로 말하고 있어서 왠지 저 사람... 우리나라 웹에 자주보이는 '일빠 즐~' 이란 표현처럼, 자기 나라 돌아가면 반대로 '한빠 즐~ 한빠 즐~ 한빠 즐~' 당하지 않을까 걱정돼...;; 다소 어리둥절한 게 사실이었습니다(쿨럭;;) 뭐 물론 모든 얘기가 10년도 더 전의 얘기지만 말이지요^^;

그래도 10년 전, 서태지에 관한 외국인의 이야기를 넘어 한국과 한국 음악계 전반을 저렇게 헤아려 보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단 데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독특하고 재미난 시선의 글이었다고 하겠습니다-_-)b 지금 상황과 연관해 생각해 보면 웃기는 부분도 좀 있지만 꽤 선견지명적인 부분도 보여요^^;

개인적으론 '(공윤심의 등)그게 벌써 10년 전 얘기란 말인가;;(먼 산)'와 '맞아맞아, 그땐 그랬지...'란 왠지 늙은이(...)스러운 감상이 들기도 했습니다_no

그럼 이것으로 일본 3집의 맛뵈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_-_) 심심하면 다음에 다른 아이템으로 돌아오겠습니다-_-)/

덧글

  • 음반수집가 2006/10/15 03:13 # 답글

    글 흥미진진하게 보고 갑니다.
    무척 재밌네요. 흥겨운 시간이었습니다. ^^
    저도 일본반으로 사고 싶은 욕망이 생기네요. ㅋ~~
  • ◆박군 2006/10/15 10:14 # 답글

    오호호호... 정말 잘 봤습니다!
  • Reds 2006/10/15 15:27 # 답글

    우와 어느새 10년이 넘었군요ㅠ.ㅠ
    태지옹(당시는 '옹' 이 아니라 미소년...이었지만;) 방송 무대 컴백한다고 했을 때 비디오 준비해서 나오는 방송 다 녹화떠놓고(...) 라디오 다 녹음하면서(.....) 마구마구 파슨질 했던 게 엊그제같은데ㅠ.ㅠ 감회가 무지 새롭습니다. 글 재밌게 보고 가요>_<
  • Sion 2006/10/15 19:59 # 답글

    음반수집가// 어잌후~ 흥미진진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_-)/ 그런 욕망이 생기시면 주저말고 지르시는 겁니다-_-)b(...)

    ◆박군// 오우~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_-)/

    Reds// 그러게나 말입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만 그사람은 왜 미소년 시절이나 '옹' 시절이나 얼굴이 변함이 없을까요_no ( <- ) 오히려 점점 더 젊어 지는 듯한...;;(먼 산)
  • 제목없음 2006/10/17 10:10 # 답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럼 4집은 여전히 시대유감 MR이 들어가는걸까요(...)
  • Sion 2006/10/19 19:56 # 답글

    제목없음// 네, 그렇죠;; 하지만 가사없는 곡이 오히려 그 시대를 반증하고 있으니 완전판이라는게 나오면 오히려 재미없을지도...;;(아니 그래도 사긴 사겠지만_no)
  • 요아킴 2006/10/29 10:50 # 답글

    후우, 시온님에게 저 음반 뺏어야지 =ㅅ=! (.......하아하아, 아주 좋은 음반이다. [우홋])
  • Sion 2006/11/02 00:05 # 답글

    요아킴// 아아...지르지 않겠는가-_-)b( <- )
  • 2014/08/04 01:16 # 삭제 답글

    2007년에 나온 재발매 반이 단색인 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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